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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윤상현 XX 발언 녹음,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종편 채널A가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김무성 대표를 겨냥해 막말한 녹음 파일을 공개했죠. 제보를 받은 것이라고 하는데, 2월 27일 윤 의원이 지역구 사무실에서 만취 상태로 누군가와 통화한 것을 사무실에 있던 제 3자가 녹음한 것이라고 하네요. 윤 의원은 누가 녹음했는지 당시 사무실에 함께 있었던 사람, 즉 ‘내부자’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윤 의원 홈피는 9일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차단됐다. 뜨거운 반응


과연 이 녹음이 불법인지 합법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언론에선 불법이라고 못 박고 있긴 한데, 관련 판례나 법조문을 뒤져보면 좀 애매한 면이 있기 때문이죠. 몇몇 친한 법조인들한테 물어보니 불법에 가깝다고 하면서도, 합법 불법을 명확히 규정하기보다 당시 상황을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는 여지를 남기네요. 


왜 그럴까요. 우선 관련 통신비밀보호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 사실확인자료의 제공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경우에는 당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14조(타인의 대화비밀 침해금지) ①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할 때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 등에 처한다는 벌칙 조항도 있습니다.


판례상 명확하게 합법 불법으로 나눌 수 있는 건 다음과 같은 상황이죠. 전화 등 대화에 참여 중인 사람이 녹음한다면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더라도 적법, 반면 어떤 장소에 녹음기나 스마트폰을 갖다 놓고 자신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인 A와 B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는 어떨까요. 윤 의원의 사무실엔 몇 명이 더 있고, 윤 의원이 통화합니다. 녹음을 한 사람이 X라고 가정하고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첫 번째 상황은 X 씨가 윤 의원과 원거리에 있으면서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겁니다. 이 경우엔 불법성이 짙다고 볼 수 있죠.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타인의 대화를 은밀히 녹음한 것이니 말이죠. 


하지만 두 번째 상황을 가정해 볼까요. 소파에 X 씨가 마주앉아서 윤 의원과 이야기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때 마침 전화를 하게 된 윤 의원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이죠. 만취 상태에서 마치 X 씨가 들으라는 듯 신 나게 떠벌립니다. 



두 번째 상황이라면 과연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제한하고 있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윤 의원 스스로 당시 술을 많이 먹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죠. 정치권의 일은 정치권에서 푸는 것이 도리에 맞지만 만약 수사로 가더라도 X 씨가 이런 식으로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윤 의원이 만취 상태라 기억도 못할 정도의 상황인데 증인이 따로 없는 이상... 물론 가정일 뿐이죠.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죠. 


위에서 밝혔듯 몇몇 법조인에게 두번째 상황을 가정해 문의를 하니 불법이라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길 하네요. 명쾌하게 법리 해석이 가능하거나 비슷한 판례를 아는 분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채널 A에서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윤 의원은 이런 말을 했군요. "김무성이 죽여 버리게. 이 XX. 다 죽여, 그래서 전화했어. 내가 당에서 가장 먼저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려야 한다고…. 내일 공략해야 돼. 응, 응, 응, 오케이 형님"


어쨌거나 사적 대화가 녹음되고, 이런 식으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정치도 낭만이 점점 사라지고 있네요. 어디 녹음 무서워서 말 하겠습니까. 낭만은 저물고, 비열한 거리로 변해가는 여의도 모습이 씁쓸할 따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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