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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책책책

<걸림돌>나치의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걸림돌’(Stolpersteine)은 가로 10cm 세로 10cm의 황동 판이다. 행위예술가 ‘군터 뎀니히’가 나치 정권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등을 추모하며 1992년부터 이 걸림돌을 만들어 거리에 까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일을 넘어 전 유럽으로 이 프로젝트가 확대돼 2015년 6월까지 18개국 5만 3000개 이상이 깔렸다고 한다.

 

<걸림돌> / 키르스텐 세룹-빌펠트 / 살림터

 

독일의 쾰른 시를 걷다 보면 보도블록에 이 추모석이 깔려 있단다. 황동 판에는 당시 희생된 개인의 삶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저자는 이 판에 새겨진 이름들을 추적해 돌판 뒤에 감춰진 사연들을 소개했다. 책에 기록되기 전의 사연들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이 됐겠지만, 저자의 발굴 노력에 힘입어 독일뿐 아니라 멀리 한국에서 나 같은 일반인에게까지 전해진 '역사'가 됐다. 특히 이런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한발 더 나아가 기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걸림돌 프로젝트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시금 ‘짓밟히는’ 느낌이 들게 한다고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집 앞에 깔린 걸림돌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고 소송을 당하기도 했단다. 군터 뎀니히는 18년간 이 작업을 하면서 세 번씩이나 살해 위협의 협박 전화를 받았고, 프로젝트 반대자들에 의해 페인트칠 되거나, 실리콘으로 덧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 청소년 등 많은 시민이 희생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경각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긍정적 측면이 상당했다고 말한다.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어떤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 숱한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희생과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은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정부에선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 다른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사례처럼 시민사회, 아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고,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야 한다.

 

전국 지자체에서 뒤늦게나마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녀상 문제는 단순히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과 지난 ‘한일 간 합의를 수용하자는 사람들’ 간에 건립이냐 폐지냐를 놓고 싸울 문제가 아니다. 소녀상은 그 자체로 망각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남겨놔야 할 조형물이다.

 

이 책의 추천글을 쓴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글 일부를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서럽게 죽은 사람은 망각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무고한 희생자를 기억할 책무가 있다.…쾰른의 한 시민이 피 끓는 양심의 소리에 화답했다. 그리고 그 양심의 형상화에 나섰다.…많은 시민이 앞다투어 화답했다.…불행한 과거사의 화해를 가로막은 ‘걸림돌’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과 독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2016/02/01 - [세상사/책책책]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어떻게 불러야 하나-[25년간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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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하면서 알게 된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