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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책책책

<정의를 버리며>

그럼에도 법이 살아있다고 믿는 것은 법이 정의로워서라기보다는 법이 애초 완전하지 않다고 인정해 버려서가 아닌가. 어쩌면 나 스스로 법 정의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너무 성급히 규정해 버렸는지 모른다.

 

거리에서, 현장에서 법이 정의로운가를 나보다 더 고민한 권영국 변호사. 용산사태와 쌍용차 사태, 이어진 재판부의 판단 등을 겪으며 ‘법은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버린다’고 선언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든 권 변호사.

그의 행동을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지만, 정의를 입으로만 떠드는 이 시대에 정의를 위한 몸부림을 칠 줄 아는 용기에 이념이나 시시비비를 떠나 박수를 보낸다.

 

철창을 오가는 속에서 진행된 결혼 등 절절한 러브스토리도 책에 담겼다. 그의 인생의 약속이 돼 버린 사법시험을 보기 전 노동자들과의 약속이 인상 깊었다. 고등학교를 나온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다가 잘못되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면서 "당신은 학출(대학 출신)이니 일이 잘못돼도 우리랑 상황이 다르지 않느냐"는 물음에 권 변호사는 "여러분이 내게 가라고 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고 그 약속이 좌우명이 됐다고 한다. (p. 143~145)


책을 읽으며 최근 몇몇 사건으로 권 변호사에 대해 알려진, 아니 내가 그동안 선입견으로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부분, 잘못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린 면도 있다.

 

대한문 앞 사건에 대해 권 변호사는

"현장에서 문제 제기되지 않은 일은 하나의 사안으로 그 이상 법정에 갈 확률도 떨어져요. 그런 일이 반복되면 모든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버립니다. 이제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언제든지 명령을 해도 된다는 듯이 굴 것입니다. 또 자기들 임의대로 사유를 만들어 집회를 언제든지 침해할 것입니다. 경찰의 직권남용을 한 번 방치하면 그렇게 됩니다" "최소한 우리가 기본권에 대해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사실 민주주의의 영역을 확대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p.224)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결정에서 권 변호사가 법정에서 재판관들을 향해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외친 사건은 유명하다. 이 일로 나는 권 변호사가 통진당의 활동을 전적으로 동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사실 나는 당시 통합진보당의 여러 내부적인 분란이나 정파적 갈등을 보며 그 정당을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근데 볼테르가 그런 말을 했죠.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생각 때문에 당신이 탄압을 받는다면 같이 싸우겠다고.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생각의 자유 자체를 국가가 통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p. 249)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낡은 주제는 헌 옷처럼 옷장에 처박아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하다. 

 

저녁 자리를 마치고 귀갓길 버스안, 텅 빌 줄로만 알았던 버스가 만원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니 오늘도 12시가 넘었다. 후딱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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