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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응답하라

 응답하라 2000!

 

 유명한 ‘응답하라’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흘겨 들은 대강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내 얘기를 더해 ‘응칠’, ‘응사’, ‘응팔’이 아닌 ‘응공’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2000년 3월 입학식을 마친 학부 1학년 같은 반 친구들은 풋내기들이었다. 고딩 티를 벗고자 나름의 멋을 냈다곤 하지만 어설픈 머리 모양과 옷차림. 그나마 단정함을 풍기는 서울내기들이 눈에 들어오는 정도의 차이였다. 고교 4학년 수업이라 명명한 교양 강의를 함께 들으며 선배에게 주워들은 짧은 지식에 더해, 개인의 적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적절히 섞어 정외과냐 경제학과냐 전공선택을 하던 학부생들.


 군대로, 취업 전선으로 아마추어같은 모습이 조금씩 걷힐 때쯤 서로 간의 연락처도 하나둘 지워지기 시작했다. 30대 초반 10여 년이란 공백기가 지나고 나서야 다시 연락이 닿았다. 간신히 유지하던 두 세 명의 연락처가 청첩장이 한 순배 돌아가면서 네 다섯으로 확장되고, 취기가 오른듯 몇 순배 청첩장이 돌자 어느덧 10명이 넘는 동창생들이 마포의 한 갈비집에서 모여 모임을 갖기도 했다. 청첩장이 이뤄낸 ‘청첩 대전’의 성과라고나 할까.
 한 명 한 명 친구의 소식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그들의 현주소, 즉 직업을 확인하는 쏠쏠한 재미가 더해졌다. 현재까지 업데이트된 풋내기들의 15년 차 직업군에는 일반 회사원에서부터 전문직까지 다양했다. 누군가에게 내 대학 친구라 소개하기에 자부심이 느껴질만한 직종도 여럿 포함돼 있었다. 내 직업까지 더하면 참 각양각색인 셈이다. 어엿하게 모임에 자리한 그들의 모습 역시 더 이상 내 기억 속의 풋내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심지어 정책 결정 과정에도 나름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프로들로 어느덧 성장해 있었다.


 이들의 인생에서 있었을 법한 치열한 도전 과정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결과가 어느정도 과정을 말해주기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단번의 성취로 볼 수 없고, 여러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실패로 방향을 전환하다 보니 이루게 된 뜻하지 않은 성취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 왔다. 1학년 때 보여준 성실함이 1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모르긴 몰라도 남들보다 10년쯤은 빠른 성취를 이뤄낸 것으로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아직도 도전을 쉬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찌 됐든 걱정 많고, 학점 하나에도 노심초사하던 미생들이 사회 초년생 반열이긴 하지만 이 사회에서 하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30대 중반, ‘청첩대전’의 열기가 조금씩 사그라지고 출산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더니 활발하던 모임은 다시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처녀 총각일 때에야 주말이든, 평일 저녁이든 뭉치면 반가웠고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풀어도 부담이 없었지만 어느덧 맞벌이에 미생 중의 미생인 자녀까지 돌봐야 하기에 직장 외 동창들의 모임과 만남까지는 점차 부담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이 흐름은 아마도 우리 자녀들이 중학생이 될 때쯤, 주말에 아이들이 부모들과의 나들이보다 친구들을 더 찾기 시작할 때쯤 다시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말처럼 기약하긴 어렵지만, 지금보다 추억을 먹고살게 되는 50대가 되면 청첩장이라는 번거로운 무기가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다시 모이게 되겠지. 2000년과 2015년의 간극 속의 괄목상대까지는 아니더라도 2015년과 2030년의 시간 속에서도 분명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땐 나 역시 15년 혹은 30년 만에 만난 동기생에게 좋은 일로 회자 되었으면 하는 바램. 글로 세상의 갖가지 풍경을 전달하고 견제하는 직업을 가진 내 영역에서 그런 괄목상대를 이룰 만한 첫걸음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미루고 미뤄왔던 블로그를 시작한다. 매일 매일 쓰는 풋내나는 이 블로그의 글들이 2030년쯤에는 나름의 숙련도를 가진 완생스러운 글이 돼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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