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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위태한 정의의 여신상

열심히 그린다고 그렸는데 보조 효과를 줄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위태로운' 정의의 여신상 모습이 됐다.

 

2년 전 최민호 판사가 ‘명동 사채왕 뒷돈’으로 구속됐을 때만 해도, ‘어떻게 판사가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법정에서 그가 수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다. 법복을 입고 판결을 내리던 판사가 하루아침에 푸른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섰다. 직업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공무원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최 판사의 초점 흐린 눈빛과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올해 유난히 많은 판사와 검사의 비위 행위를 접해서일까. 법대로 집행하고 법대로 판결을 내려야 할 이들이 구속되고 징계를 받는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낯설지 않다. 당사자들이 너무 많아 정리가 필요할 정도다. 우선 검찰은 ‘주식 대박 사건’ 진경준 검사장, 자살한 검사에 폭언·폭행한 김모 부장검사, 가장 최근엔 피의자 스폰서 의혹 김모 부장검사. 다음으로 법원에는 대가성 외제차 받은 김모 부장판사, 성매매로 단속현장에서 적발된 A 부장판사. 범위를 좀 더 넓히면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최유정 전 부장판사, 홍만표 전 검사장 등 현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법조인들도 포함된다.


이 정도면 매년 대법원장 신년사에서 등장하는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법관의 자세를 언급하기 무색하다. 검찰도 ‘공명정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상수가 아닌 변수가 될 지경이다.


검사나 판사도 사람이지만 지고지순함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형벌권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인신구속할 수 있는 권한은 아무나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유일하게 그들에게만 부여했다. 개인의 재산권 등을 다투는 민사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공공성과 윤리성이 극도로 요구되는 이유다. 수사하는 검사와 재판하는 판사가 완전무결하지 않고 비리에 오염돼 있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하면 형벌권에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스폰서 부장검사에게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있겠나. 외제차 부장판사에게 재판을 받았던 피고인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항변한다면 법원이 자신 있게 ‘아니다’라고 방어할 수 있나.


최근 법조비리 사건은 이처럼 법 신뢰를 앗아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과거에도 늘상 있었던 비리가 이제야 드러난 것이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도 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책 나열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분위기다. 검찰은 감찰을 즉각 시행하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어째서 언론의 문제 제기나 당사자들의 고발성 폭로가 있기 전에는 자체 감찰을 통해 선 적발된 사례가 없을까.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을 처리하는 수준을 보면 검찰과 법원의 내일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체 정화 능력을 상실한다면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 외부 메스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