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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시사스러운

헌법을 다시 읽다.


딱히 글 쓸 의욕이 나지 않는 요즘, 헌법을 다시 읽어봤다.

필요할 때마다 헌법 조항을 찾아보곤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건 오랜만이다. 복잡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했는데, 이번 최순실 사태를 보고 듣고 겪으며 기본으로 돌아갈 만한 건 역시 헌법이었다.


볼 때마다 다르게 느끼지만, 오늘 읽은 헌법에서는 ‘정의’라는 단어가 특히 와 닿았다. 불의와 사사로움이 판쳤던 대한민국. 서슬 퍼렇게 원칙을 부르짖으면서도 가장 비원칙적이었던 대통령. 이를 기회삼아 사적 영역이 고스란히 공적 영역으로 넘어와 보란 듯 군림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민간 영역에서도 그들은 발 뻗는 곳마다 권력자 노릇을 했다. 봉건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 아니냐는 하소연이 버젓이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21세기에도 자행됐다. 사교와 국정농단이라고 돌아다니는 찌라시 의혹들이 단지 의혹이 아닌 사실로 드러나면서 의혹과 사실의 경계도 불분명해졌다.


비선의 줄에 서서 작두를 탄 줄도 모르고 대장 행세하던 일가 후손들은, 박 터지는 교육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프리 패스로 대학 관문을 통과했다. 민간 기업을 쥐락펴락하며 수백억의 출연금으로 재단 몇 개쯤 뚝딱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축적된 부정한 재산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으나 권력에 댄 줄을 타고, 부는 흘러흘러 들어 갔다.


불의가 이처럼 자행되는 동안 나 역시 내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너는 그러면 그때 뭐 하고 있었나 이런 질문에 당당하고 떳떳할 수 없어 생기는 자괴감이다. 대통령 당신만 자괴감이 드는 게 아니다. 당신이 그토록 자괴감이 드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 요즘은 뭘 해도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이제라도 부끄럽지 않아야겠다 다짐해 본다. 헌법을 다시 꺼내 든 건 내 안의 정의로움, 내가 추구해야 할 정의로움의 지향점을 다시 발견하고 싶어서다. 사실 헌법 안에 이 정신이 다 명시돼 있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을 가진 한 사람답게,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는’ 역할에 충실해야겠다.


아직 정세 파악이 잘 안 되는 것 같은 대통령께서도 헌법을 다시 한 번 정독해보시길. 특히 취임 때 했던 엄숙한 선서를.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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