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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틈새 글쓰기

틈새 글쓰기 - 1. 어떻게 쓸까

창작에 전념해야 하는 전업 작가의 길은 고달프겠지만, 짬 나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써야 하는 나 같은 비작가 처지에서 보면 한편 부러운 면도 있다. 푹 빠져서 글에 전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해 글을 쓸 수 있을지 나름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틈새 글쓰기라는 이름을 붙여 봤다.


틈새 라면이 유행했을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은 ‘정식 한 상 차림은 아니지만 간편한 식사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금은 비좁은듯한 매장, 한쪽에 붙어있는 포스트잇과 낙서와 독특한 맛, 틈새라서 푸짐함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인상은 강렬했다. 비작가들의 틈새 글쓰기 역시 뭔가 갖춘 상태에서의 글쓰기는 아니지만 짧으면서도 오히려 새로운 시각, 강한 인상을 전달할 수 있다. 그게 틈새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짧은 시간 활용

직장인이라면 밥 먹으러 오가는 시간, 일과 일 사이 잠깐의 휴식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앉아서 골몰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 소재도 산책하면서, 주변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출퇴근 시간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삼라만상이 사실 글의 소재가 된다. 헬스를 하면서 ‘왜 운동 안 해도 될 만한 건강 체격의 사람들은 헬스장에 죄다 있고, 정작 운동해야 할 비만 체중은 별로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좋은 글감이다. 택시 타고 출근하다 아이디어가 기막힌 간판을 만난다면 바로 휴대전화 메모장 기능 앱을 실행하면 된다. 육아를 하는 아빠 엄마라면 대화 자체가 글감이 될 때가 많다.


△메모

떠오르는 소재를 바로 글로 쓰기는 어렵다. 일을 해야 하므로 글감과 글쓰기 시차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메모는 그래서 중요하다. 일단 떠오르면 메모해 놓는다. 메모장에 글로 할 수도 있고, 요즘처럼 그림 앱이 잘 나오는 때엔 연상되는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남겨도 된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서 관련 연상이 떠오르면 또 메모한다. 나중에 글을 쓰려고 앉으면 거기 연상된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소재가 한 겹에서 두 겹 삼 겹으로 불어나면 그걸 그대로 글로 옮기면 된다.


△글쓰기

틈새 글쓰기에서 글의 질은 두 번째 문제다. 일단 작은 분량이라도 하나의 완결된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 글 작성, 수정, 퇴고의 시간이 넉넉하다면야 오래 붙잡고 있으면 되지만 우리 직장인들은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30·40대는 특히 육아도 해야 하고, 배우자의 집안일도 거들어야 한다. 직장에선 당연히 일해야 한다. 글 쓴다고 업무를 소홀할 수는 없는 문제다. 잠깐의 짬이 전부다. 일단 쭉 써내려간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익숙해지면 자연스럽다. 그런 다음 독자의 관점에서 한번 읽어본다. ‘독자의 관점에서 읽기’는 생각보다 효과적이다. 작가의 관점에서 탈피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쓴 초안을 새로운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어색하거나 이해 안 되거나 개발새발인 부분을 다듬어보자. 처음보단 자연스러울 거다. 독자 입장서 읽기-작가 입장서 고치기를 두세 번 반복하면 그럴듯한 완성된 글이 나올 수 있다. 


△폐기처분

아무리 고쳐도 이상하다면 그 글은 폐기하자. 시작부터, 소재부터 잘못된 글일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모르는 글이거나 오직 분량 확장을 위해 무의미하게 쓴 글일 수 있다. 틈새 글쓰기이기 때문에 버리는 것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다시 틈새로 창작하면 된다. 무의미한 글은 대체로 의무감에서 글을 시작하는 경우 발생한다. 하지만 의무감에서 글 쓰는 것도 괜찮다. 그런 글 중에 수작이 나올 때가 있다. 또 폐기처분을 하면서 왜 시작부터 잘못됐는지 따져보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폐기처분이 내 글을 폐기하더라도 글쓰기 실력은 높여준다.


△도무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책을 읽자. 떠오를 것이다. 떠오르지 않으면 독후감이나 서평을 남기면 된다. 누군가의 좋은 글을 인용하고 거기에 대한 한 줄 감상평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글이 탄생할 수 있다. 아니면 가족이나 지인과 대화하자. 누군가의 일상화 뒷담화를 통해 의외의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이제 나가야 한다. 짧은 시간에 난 또 틈새 글쓰기 하나를 완성했다. 뿌듯. 이 맛에 틈새 글쓰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