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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틈새 글쓰기

몽롱할 때 쓰는 글

한 주간의 피로가 몰려오는 금요일 자정을 넘기고, 새벽 2시도 넘겼다. 몹시 잠이 온다. 잠이 몹시 온다. 온다, 잠이, 몹시.


이불에 콕 처박히고자 하는 마음은 내 본성, 그걸 이기고 글을 쓰고자 앉은 건 내 이성에서 비롯됐다. 이 순간만큼은 이성의 승리다. 비록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인격을 이성과 본성으로 나누거나 이성이 본성을 억압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전인격의 실현을 강조했지만, 나는 본성에만 충실하지 않은 데서 오는 ‘이성적 쾌감’도 분명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이라고 배웠는데 ‘사고’가 이성에 가깝고 ‘동물’이 본성에 충실한 배경을 이해한다면,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은 ‘이성하는 본성’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00하는 XX’라는 수식 구조에서 XX는 00이라는 수식어에 갇히기 때문에 결국 00, 즉 이성의 승리다. 이불 속의 온기를 떨쳐버리고 노트북을 펼친 대견함을 설명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이 글의 주제는 몽롱함이다. 꼭 맑은 정신에서만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바른 생활 사나이들은 무조건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야 하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명 작가의 실루엣은 뭔가 그림자의 경계선이 흐릿흐릿하고 흐트러짐이 연상된다. 바른 생활의 반듯함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유명 작가는커녕 무명작가도 아닌 주제에 코스프레 한답시고, 몽롱한 상태서 글을 뽑아 드는 배짱을 부리고 있다.


막상 꺼내 들었더니 휘갈길 거리라고는 내 몸 상태인 본성과 그것을 이겨낸 대견한 이성밖에는 없다. 콘텐츠 부재의 한계다. 빈 통 소리가 너무 요란해 오늘도 뭔가를 좀 채워보려고 책 몇 권을 집으로 공수했고, 또 설 연휴를 앞두고 몇 권은 친절한 택배 기사님의 손에 이끌려 내일이나 다음 주쯤 배달될 예정이지만, 요란함은 멈추질 않는다.


그래서 더 몽롱한지 모르겠다. 몽롱해서 요란한지, 요란해서 더 몽롱한지 알 길이 없다. 이상은 ‘오감도’라는 문제적 시를 쓰면서 과연 맨정신이었을까. 읽기에도 숨이 벅찬데, 쓰는 이는 오죽했을까 싶다. 가득 채워야 하나, 요란해야 하나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빈통에서온갖아해들이질주하는발작적글이탄생하는것일까가득채움에서뽑아낸가래떡처럼해석도제대로되지않지만뭔가가득찬글을생산해내는걸까


15분이 지났다. 시간이 갈수록 몽롱함이 줄어드는 대신 피로감이 더해진다. 육체의 나약함 앞에 장사 없다. 이만 이불이 부르는 곳으로 향해야겠다. 온기 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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