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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틈새 글쓰기

틈새 글쓰기 5 - 글감 찾기

요 며칠 시골에 왔더니 영감이 샘솟는 기분이다. 저마다 바쁘고 잘난 현대인들 사이에서 지내다가 한적한 데로 온 까닭이다. 하늘로 쭉쭉 뻗은 빌딩과 개성 없는 온갖 프랜차이즈 간판이 있는 도심서 잠시 떨어졌다. 절로 숨통이 트인다.

이곳은 여유가 있다. 평소 볼 수 없는 하늘이다. 저 멀리 산과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도 볼 수 있다. 부뚜막아궁이 속에서 타오르는 화염의 순결한 에너지를 본다. 불타는 장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됨을 느낀다. 집 앞 소들이 싼 똥이 몽실몽실 연기를 뿜어내는 찰나도 포착했다. 마을회관 옆 목줄이 묶인 염소가 이 강추위를 어찌 견디나 싶기도 하고, 할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에서 인생을 본다.

날마다 이런 환경이라면 글감 고민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1년에 명절은 두 차례뿐이고, 여행을 갈 수 있는 휴가도 손을 꼽는 수준이다. 여행지에서의 글쓰기는 엄격히 말하면 ‘틈새 글쓰기’는 아니다. 틈새에서 쓰는 글은 일상에서의, 현장에서의 글쓰기다. 늘 똑같은 환경에서 쓰는 것이 바로 틈새 글쓰기다.

소재 자체가 일상에 있다 보니 글의 소재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맨날 뻔한 글을 쓸 수밖에 없나. 아니다. 또 아니어야 한다. 틈새에서 쓴다고 뻔한 글을 써도 되는 건 아니다. 새로움은 기본이다. 글감이 새로울 게 없는데 어떻게 새롭게 쓸 수 있을까.

다르게 보기다. 해답은 같은 소재를 새롭게 보는 데 있다.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글감은 얼마든지 넘쳐 난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이 눈에 들어 온다. 근무지 복도에 덩그러니 있던 소화기를 1년이 다 돼 가도록 지나쳤지만 잠깐 주의를 기울이자 보였다. 소나무가 지조의 상징이라고 관성적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주변의 시선, 세상이 주는 시각에 부담스러워하는 소나무의 고충이 보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처가에 내려가고 정적이 흐르는 거실에서 홀로 있을 때 1일 차와 2일 차의 기분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걸 글에 담았다. 출근길 간판의 문구가 마침 그날따라 새롭게 다가왔다. 중고 책 백여 권이 책장에 꽂혀 있지만, 어느 날 누군가가 쳐 놓은 밑줄을 보고 그의 인생을 생각하게 됐다. 이 모든 일상이 글감이 됐다. 틈새 글쓰기는 이처럼 다시보기, 새롭게 보기를 통해 탄생한다.


이제 이틀 뒤면 다시 일상이다. 다시 틈새를 공략하러 떠난다.


설 인사를 마치고, 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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