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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4곳의 성형외과를 다녀와서

프롤로그. 

몇 주 전 아들이 외갓집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성형외과에 갔다.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선에 있는 상처 부위를 몇 바늘 꿰맸다. 다행히 상처가 티 안 나게 잘 아물었고, 서울로 올라왔다.



상황 1. 

며칠 전 아내가 아들의 이마를 보더니, 실밥 하나가 덜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아주 작지만 까만 실 하나가 상처 끄트머리를 관통하고 있는 게 보였다. 외갓집이 지방이라 갈 수 없어, 사진을 찍어 그 성형외과에 보냈다. 실밥이 덜 빠진 게 아니란다. 보이지 않는단다. 나는 딱 봐도 보이는 실밥이 그 성형외과 의사 눈에는 왜 보이지 않았던 걸까.


상황 2. 

금요일(2월 10일)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성형외과에 갔다. 접수를 받기도 전에 간호사가 "무슨 일로 오셨어요?"라고 묻더란다. 여차여차해서 왔다고 하니 의사가 지금 없다고 했단다. 문을 나섰다가 둘째가 쉬가 마렵다 해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기 위해 다시 그 성형외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의사가 떡하니 나와서 간호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더란다. 성형외과는 원래 비밀 통로라도 있는 걸까.


상황 3. 

첫 번째 병원에서 퇴짜맞은 아내는 애 둘을 데리고 힘겹게 두 번째 성형외과에 갔다. 비슷한 전철을 밟았고, 역시나 진료 퇴짜를 맞았다. 아마도 여섯 살 난 어린아이라 진료가 번거롭고, 돈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추정일 뿐이다. 대놓고 그런 이야길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둘째는 잠이 들어, 진료를 거부한 성형외과 한편에서 재워야 했다. 잠이 덜 깬 둘째와, 실밥을 이마에 간직한 첫째를 데리고 아내는 힘겹게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몸보다 마음이 더 힘겨웠을 것이다.


상황 4. 

이 소식을 듣고 열 받은 남편(나)과 아내는 토요일(11일) 다른 병원을 찾았다. ‘아무리 성형외과라도 의인이 한 명은 있을 거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문을 열자마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몇 초 만에 실밥을 제거해 줬다. 아내와 아이들을 내려주고 빌딩 지하에 주차하고 올라가니,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의학 지식이 부족한 부모로서는 실밥을 뽑으면서 혹시나 몇 주 동안 아물 대로 아문 살이 상처가 나지 않을까 며칠간 노심초사했지만 기우였다.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뻥 뚫린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 성형외과는 돈도 받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치료인데, 뭘 돈까지 받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된 의사인지, 당연한 일을 하는 의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친절한 간호사님은 주차권에 도장까지 찍어줬다. 이럴수가! 정말, 다시 생각해도 이렇게 간단한 치료였다. 이런 진료를, 앞에 두 성형외과는 진료를 거부했던 것이다. 


에필로그. 

그렇게 오전에 성형외과를 다녀오고, 기분 좋은 마음에 가족 나들이를 갔다. 두 번의 외출은 무리였던지라 오후에 있었던 결혼식은 나 혼자 갔다. 거기서 오랜만에 한 후배를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던 중 모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성형외과란다.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성형외과를 갈 일도 없었고, 주변에 성형외과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일이 생기려니 참. 그 후배를 한 대 툭 쳤다. 똑바로 하라고. 전문의 따면 연락하라고 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세상이지만, 의사가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쓴소리 좀 미리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7/02/09 - [인생사/틈새 글쓰기] - 틈새 생각 - 월화수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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