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사색

책장에 꽂힌 책 몇 권을 뽑아 들었다. 신영복의 ‘담론’에서 수감 생활의 일화를 봤고, 김훈의 ‘바다의 기별’에서는 그가 기자 시절 박경리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 부분을 읽었다. 그걸 보다가 박경리가 생각나 토지를 뽑아서 잠시 봤고, ‘감득하다’라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 사전을 찾아봤다. ‘느껴서 알다’ ‘영감으로 깨달아 알다’라는 뜻이 있었다. 1989년에 개정판 3쇄로 발행된 책이다. 작년 중고로 구매했을 때부터 한껏 바래진 상태로 도착한 책이다. 또 시시콜콜한 에세이 몇 개 뽑아서 제목을 훑으며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썼나 생각했다. 도서관에 꽂힌 많은 책보다 집에 먼지 쌓인 수백 권의 책이 요긴할 때가 있다. 언제든 내 맘대로 꺼내볼 수 있으니.



그렇게 책을 보다가 CD에 눈이 갔다. 작년 이맘때쯤 끌리는 마음에 중고 CD를 우수수 구매한 뒤 가끔 듣는다. 먼지가 슬며시 앉아 있는 ‘김광석 best’에는 그의 일기와 사진, 악보가 있었다. 글씨가 생각보다 정갈하다. ‘예술가들은 악필’이라는 내 근거 없는 추측이 살짝 깨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작사 작곡한 악보를 봤다. 지저분할 줄 알았는데, 다시 한 번 예상이 빗나갔다. 이런 차분한 악보에도 이리 가슴을 후비는 노래가 나올 수 있구나.


이렇게 옛것들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반가운 마음에 소감을 남기고 있는데, 아들놈이 찾아왔다. 아빠 앞에 기어코 앉겠단다. 그놈을 다리에 앉히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아이는 글씨가 차곡차곡 채워지는 게 신기한지 질문 연발이다. 내 짧은 사색도 귀여운 방해꾼의 공격으로 중단됐다. 그래, 어쩌겠나. 오늘은 여기까지다.


2017/02/22 - [인생사/틈새 글쓰기] - 틈새 생각 - 불행과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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