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주말

인생사/육아아아하 2017.02.26 18:10

아이들과 함께했던 주말 추억을 기록해 두기 위해 줄줄이 남기는 글이다. 


#토요일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맑고 포근한 주말 날씨는 사전에 떠들썩하게 예고돼 있었다. 라디오에서, 신문 날씨 면에서, 방송에서 ‘주말엔 나들이하기 좋습니다’라고 며칠 전부터 떠들어댔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웬만한 가장에게는 약간의 의무감과 기대감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나는 굳이 이야기하라고 하면 기대감이 좀 더 컸다. 사실 한동안 맹렬한 추위로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외출하는 게 좀 부담스러웠었기 때문이다. 아이 둘을 데리고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요즘 자신감도 좀 붙어 있었다.

저녁 자리가 있어 금요일 자정 넘은 시간 집에 들어와 무척 피곤하기는 했지만, 토요일 아침이 되니 이상하게 힘이 났다. 주말 프리미엄이 아닐까. 아침 7시에 눈을 떠서 좀 더 자려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 고민이 들어 결국 잠을 접었다. 내가 더 들떴던 모양이다. 아이 엄마는 토요일 오전 누군가의 병문안을 가야 해서, 이미 두 녀석을 나에게 맡기기로 예약돼 있던 상태였다. 그 말은 토요일 이 시간은 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의무감 불끈! 서울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올림픽공원, 사육신공원, 효창공원 등 공원이라는 단어가 붙은 곳은 죄다 후보지로 올렸다. 그런 다음 일단 먼 곳은 후보지에서 제외했다. 혼자서 여섯, 넷 먹은 아이 둘을 데려가다 쉬라도 마렵다 하면 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육아에서 생리적 현상은 최우선 고려 대상! 후보지는 서울대공원으로 좁혀졌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이 놀기는 좋지만, 워낙 넓어서 애 엄마가 있을 때 가기 적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른 곳이 최근에 다녀왔던 용산 전쟁기념관이다. 가깝기도 했고, 전시물이 그리 넓게 퍼져있지 않아 혼자서 둘을 커버하기 충분해 보였다. 무엇보다 아침에 깬 아이들에게 어디로 갈지 물었더니, 첫째가 이 기념관을 가장 크게 이야기했다. 평소 자동차를 좋아하던 아이는, 거기 있던 전시물들을 또 보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다녀왔다. 물론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아빠가 화장실에 가서 둘째 쉬야를 도와줄 때, 믿었던 아들놈이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아 쉬야를 하면서 옷을 흥건하게 적셔 버렸다. 도저히 다시 입을 수준이 아니었다. 화가 났다. 성을 참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가, 지혜로운 아내가 이런 사태를 대비해 여벌의 옷을 가방에 넣어준 사실을 알고 사태를 수습했다. 둘째 옷만 넣어준 줄 알았더니 첫째 옷도 가방에 있었다. 아이에게 화낸 걸 사과하고, 아이 역시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해서 다시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우리 세 부자는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와 맑은 하늘 아래 실컷 놀았다. 다시 쉬야를 할 땐 첫째가 도와달라고 하면서 아빠가 주의사항을 잘 일러주기도 했다. 화를 낸 게 좀 미안했던 아빠는 이날 만큼은 지갑을 열어, 기념품점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조그마한 장난감을 사 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역시나 예상대로 두 녀석은 곯아떨어졌고,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아비도 아이들을 따라 잠시 차에서 눈을 붙였다.


2017. 2. 26. 관악산의 작은 정상에서 여섯살 아들과


#일요일

일요일 오전엔 첫째를 데리고 관악산에 올랐다. 참고로 집 앞에 바로 공원이 있고, 그 공원 옆으로 등산로가 있다. 가끔 공원에서 놀 때면 첫째가 늘 산에 오르자 하지만, 둘째는 조금 가다가 힘들다고 해서 더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첫째가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오늘은 미리 아내와 작전을 짰다.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가볍게 산책하러 나가기로 하고, 나는 첫째와 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렇게 올랐다. 여섯 살만 돼도 이제 웬만한 정상 하나쯤은 오르더라.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들과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왔구나. 이런 취미가 한 살 한 살 더 먹을 때도 지속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산도 좋지만 올라가면서 아이 손을 잡고 대화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아이는 낙엽과 소나무, 산 정상, 내리막과 오르막, 비탈길과 바위 등등 보이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올라가다 힘들면 잠시 쉬면서 물을 먹고, 아내 몰래 준비해온 과자를 나눠 먹으며 부자애를 다졌다. 아비는 더 높은 곳까지 가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등산은 오를 때와 내릴 때 힘을 잘 배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더 오르고 싶어서 못내 아쉬워하던 아이도 한 시간 반 정도의 등산을 마치면서 내려올 때 왜 아빠가 그런 말을 했는지 수긍하는 모습을 보고 왠지 뿌듯했다. ‘이런 게 현장 교육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아들에게 "키가 조금씩 크면 더 높이 가보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오전을 보냈더니 힘이 넘쳤다.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등산을 해서였지만 아들과 함께했다는 즐거움이 커서 그런 것 같다. 산에서 내려와 둘째를 데리고 간 아내 그룹과 놀이터에서 합류했다. 엄마 아빠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깔깔대며 그렇게 오전 시간을 마무리하고 함께 교회에 갔다.


나들이하기 좋은 주말이었다.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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