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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엉뚱한 생각

틈새생각 - 편견 없는 세상

#. 내일 업무도 준비할 겸 카페에 왔다. 작지만 커피 맛이 괜찮은 가게를 갈까, 아니면 널찍하지만 맛은 그럭저럭인 곳을 찾을까 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작은 가게는 옆 테이블의 대화가 고스란히 들리기 때문에 차라리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낫다. 늘 그렇듯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가 보이는 한쪽 구석으로 자리 잡았다. 떠들썩한 카페지만 나름의 위치 선정을 잘했다 싶었는데, 5명이 몰려와서 뒷자리를 차지한 뒤로는 수다 연발이라 좀 신경 쓰이긴 하다.


#. 그러고 보니 ‘수다’를 거꾸로 하면 ‘다수’다. 수다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을 뜻한다. 다수의 의미가 어느 정도 포함된 게 재밌다. 나만 재밌는 걸까. 요즘 국어 재미가 좀 쏠쏠하다. 어제 블로그에 시를 쓰면서 ‘순식간에’라는 단어 뜻이 문득 궁금해졌다. 자주 쓰지만 순식이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한 채 쓰고 있었다. 순식은 ‘눈을 한 번 깜짝하거나 숨을 한 번 쉴 만한 아주 짧은 동안’을 의미한다. 순(瞬)은 깜짝일 순, 식(息)은 쉴 식이다. 그러면 정말 짧은 순간이라는 뜻이 쉽게 이해가 된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우산 쓴 사람들


#. 카페 창밖으로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어떤 매장에서 나오는 한 여성이 우산을 편다. 특이한 취향이라 생각했다. 이 밤에, 햇살도 없는데 우산을 왜 펴는 걸까. 그런데 웬걸, 다른 사람도 우산을 쓰고 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좀 전에 카페에 들어올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도 아니었다. 편견이다. 좀 전까지 비가 오지 않았고,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당연시했다. 복면가왕을 보면서 그렇게 ‘편견 없는 세상’을 외쳤지만 내 속의 편견은 여전했다.


#. 편견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런 세상이 오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내 속의 편견도 쉽게 없애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의 편견 종식을 기대하랴. 하지만 줄일 수 있고, 또 그런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작은 실천이 어떤 게 있을지 잠시 생각해 봤다. ‘시선’을 들고 싶다. 몸이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다시 한 번 쳐다보거나 눈길을 오래 두는 등의 과도한 시선은 편견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이런 시선은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 편견의 한 예로, 여섯 살 난 첫째 녀석이 시력이 약해서 몇 달 전부터 안경을 착용했다. 지나가다 보면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분들이 있다. 어떤 분들은 한마디를 꼭 거든다. ‘어릴 때부터 안경 써서 어쩌나’ 뭐 이런 식이다. 대체로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거슬린다. 당사자인 내 아들은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 안경에 적응을 잘했고, 또래 아이들이 없는 안경을 쓰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엄마 아빠가 쓰는 안경을 자기도 쓴다는 것에 만족감도 있다. 꼭 그렇게 불편하게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안경 자체보다 주변의 이런 시선이 쌓이면 자칫 아이가 위축될 수 있다. 안경 하나가 이 정도인데 장애를 향한 편견 시선은 어느 정도일지, 내가 그런 불편한 시선을 던진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잘 난 사람에게 시선을 한 번 더 주는 것이야 뭐 나쁘다고 하겠나. 하지만 어딘가 불편한 사람을 보면서 시선을 한 번 더 날리는 것은 무언의 폭력이 될 수 있다. 편견을 깨는 것은 이런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 글을 다 쓰고도, 뒷자리 수다쟁이들은 여전하다. 비도 아직 온다. 꼼짝없이 수다쟁이들과 잠시 더 벗해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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