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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후루룩짭짭 맛 좋은 라면

전날 회식으로 자정 넘은 시간 집에 들어갔다가 새벽같이 출근했다. 오전을 간신히 버티고 마침 점심 약속이 없어 찜질방으로 피난을 갔다. 사우나를 간단히 마치고, 찜질방에 딸린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떡만둣국을 시켰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지금은 안 된단다. 돈가스를 주문했는데 마찬가지였다. 그럴 거면 메뉴판을 달아놓지를 말지. 김치, 순두부, 된장찌개가 된다고 하길래 그냥 라면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했더니 고춧가루를 넣느냐고 묻길래 그러라고 했다. 고춧가루 서비스에 짜증 났던 감정이 살짝 풀렸다. 역시 작은 것에도 사람의 얄따란 기분은 팔락거린다.


얼큰한 라면 국물에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벌건 라면을 보고 있자니 마음마저 새로웠다. 라면. 라면. 그래, 내가 먹던 라면이다. 라면이 국민 음식이기에 누구나 라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을 거다. 김병만의 자전 에세이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봤을 때, 사람이 이렇게 라면을 많이 먹고도 생을 연명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정도 헝그리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 때 궁한 시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때가 있다.


 

대학 1, 2학년 하숙 시절엔 밥을 그나마 챙겨 먹는 편이었는데, 자취를 하던 4학년 때는 좀 달랐다. 멀리 고향서 보내주던 용돈이 동나던 월말이면 한 끼 한 끼를 정기적으로 챙겨 먹기 어려웠다. 수중에 몇천 원이 안 남을 지경이 되면 선택을 해야 했다. 한 끼 식당 밥을 그럴듯하게 먹고 몇 끼를 굶느냐, 아니면 몇 끼 라면으로 대체하느냐. 당연히 후자였다. 짧고 굵은 인생보다 가늘고 긴 인생을 택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게 라면 몇 봉지를 사다 놓고 카운트하며 먹었다. 라면은 잠시의 허기를 달래주기는 했지만, 만족도가 그리 높지 못했다. 두 세끼가 쌓이면 더 그랬다. 그런 라면이지만 남아 있을 때 안도감이 들었고, 그것마저 떨어지면 생존의 위협이 들면서 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됐다. 


그럴 때쯤 고향 집에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 한 통. "돈 넣었다. 배 곪지 말고" 암흑 가운데 빛이었다. 나는 으레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날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다시 다가올 월말에 쪼들려서 라면을 먹든 말든, 일단 치킨을 시켜먹었다. 아니면 순댓국집에 가서 따끈하게 한 그릇 먹었다. 몇 끼를 라면으로 연명한 데 대한 나름의 보상이었다. 밀가루에 길든 위장이 고깃덩어리 공습에 잠시 놀라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군대에 갔을 땐 매끼 꼬박꼬박 나오는 식사가 반가웠다. 그때 먹는 라면은 별식이다. 군대 밥이 지겨워질 때쯤 한 번씩 기분전환을 위해 먹는 그런 음식. 전역 후 20대 후반 사회 진출을 앞둔 백수 시절, 라면은 다시 대학 4학년 때처럼 생존을 위한 음식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그땐 가진 것 없어 어두웠지만 분명 꿈이 있어 찬란했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했다. 나의 어둡던 시절은 라면과 함께여서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면 그때 먹었던 라면은 ‘찬란한 라면’인가.


찜질방에서 뒤집힌 속을 달래려 먹는 지금의 라면은 복에 겨운 음식임이 분명하다. 사람마다 초심의 지표가 다를 텐데, 나에겐 적어도 이 라면이 초심의 상징이다. 이 라면 한 그릇에 내 마음을 다잡아본다. 4,000원짜리 라면이 이렇게 제값을 했다. 후루룩짭짭 후루룩쩝쩝 맛 좋은 라면. 오늘 하루 피곤하지만 살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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