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단상

세상사/시사스러운 2017.03.13 22:00

전직(前職) : 전에 가졌던 직업이나 직위

현직(現職) : 현재의 직업 또는 그 직무

명예로운 전직이 있다면 허망한 전직도 있다. 이웃이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던 사람이 그에 해당하는 전직 타이틀을 달면 그 자체로 존경의 대상이 된다. 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했던 이에게는 전직 직함 자체가 명예요 자산이다.

전직이라는 딱지가 주는 상실감이 상당한 직업도 있다. 인기를 먹고 살거나 권력을 가진, 평균치를 넘은 직업군이 그렇다. 이런 직업을 거쳐 간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직’은 을씨년스러울 때가 있다. 한창 잘나가던 연예인이 아무도 찾지 않은 지경에 이르면 서글프다. 그의 끝 모를 듯 치솟았던 인기는 추풍낙엽처럼 흔적을 찾기 힘들다. 정치인 등 강한 권력을 가진 직업군도 비슷하다. 세상 무서운 줄 몰랐고, ‘짐이 곧 권력’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직에서 물러서는 순간 플레이어에서 조언자에 그친다. 이런 사람들은 인기와 권력이 시드는 순간 달라진 현실을 체감한다. 그를 찾아 수없이 울리던 전화벨이 하루아침에 침묵한다.

이처럼 예사롭지 않은 직업일수록 전직 딱지가 주는 상실감이 상당하다. 현직이 ‘나 예전에 이런 것도 했었어’라고 말하면 지금의 그를 만든 자양분이라 생각해 우러러보지만, 같은 말이라도 전직이 하면 ‘과거의 영광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라고 느껴진다. ‘나 왕년에 말이야’ ‘내가 한때는 말이지’ ‘내가 한창 잘 나갈 때’ 등, 이런 말까지 곁들인다면 현실을 디디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전현직의 차이가 비교적 뚜렷하다. 권력은 현직일 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직은 생선회로 따지면 싱싱한 생명력을 가진 활어와 같다. 활어회는 일식에서 한 상 차림의 승패를 좌우한다. 반면 전직은 잔인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입맛을 돋우는 스끼다시 정도다. 나오면 맛있고, 없어도 그리 아쉽지 않은 존재다. 중대 사안의 결정은 현직의 몫이 되고, 전직은 아무리 잘나갔어도 곁들이는 역할에 머문다.

현직에서 전직으로의 전환이 불명예스러운 일로 끝난다면 더하다. 허망함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후회와 오명이 덧씌워진다. 차라리 되지나 말 것을. 온갖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저명한 현직 타이틀에서 한순간 전직으로 강제 추락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권력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힘은 법이다. 법을 주무르는 판사, 검사도 불법을 저질렀다면 예외가 될 수 없듯, 권력자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것도 법의 잣대에 의해 가능하다. 당사자는 법이 아닌 여론의 부당한 공격에 억울하게 손해를 입었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은 순간 흥분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법의 잣대를 좇아가게 마련이다. 최근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받은 뒤 지지율이 올라가는 어떤 정치인의 사례를 우리는 봤지 않은가. 대법원 확정판결도 아닌데 말이다.

현직에서 순간 전직이 된 어떤 이가 법을 넘어 헌법까지 승복하지 않은 사례가 발생했다.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던 위치에 있던 그는, 온갖 예우를 박탈당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절차대로 말이다. 헌정 역사에서도 초유의 일이다. 국민은 마지막 순간 통합을 기대했지만 그는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뒤끝 있는 말로 마무리했다. 갈등은 확산됐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다른 한 여성이 퇴임했다. 수십 년을 헌법과 법률에 파묻혀 살았던 그는 재판관이라는 현직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현직에서의 마지막 순간 "민주주의의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며 통합의 메시지를 남겼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한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법에 관심이 많았던 나도 사실 그의 이름을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제 내 기억 속에 그 이름 석 자가 각인됐다. 그가 얻은 전직 직함은 명예롭다.

전직은 이처럼 천차만별이다. 현직일 때, 잘나갈 때 더 긴장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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