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깨는 책, 목욕의 신

세상사/책책책 2017.03.20 15:38

지적으로 만족을 주는 책이 있고, 영감을 자극하는 책이 있다. 최근 본 책이 바로 후자에 속한다.

「목욕의 신」. 2011년 하일권이 네이버에서 웹툰을 연재했고, 2012년에 책으로 나온 걸 이제야 봤다. 신의 손을 가진 남자 주인공 ‘허세’가 최고의 목욕관리사(때밀이)가 되기 위한 도전이 줄거리다. 말이 도전이지, 궁핍한 현실이 그를 때밀이의 길로 안내했다고 해야 맞다.

사실 이 책 제목만 봤을 때, 목욕탕을 중심으로 하되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이 책은 목욕탕, 때밀이라는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과연 때밀이를 가지고 이어갈 법한 이야기가 얼마나 될까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가능하더라.

때밀이가 배틀 형식을 띠기도 했고, 수술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오디션 장면이 생각날 때도 있었다. 인생의 철학이 담긴 건 당연했다.

글감이 그다지 나올 것 같지 않은 소재에서도 이렇게 장편 만화가 탄생한다는 게 놀랍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글감을 찾아 헤매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재를 보고 글감을 연상했다기보다, 글감이 될 것 같은 소재만 보려 했던 것 같다. ‘이거 가지고 글이 되겠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세상만사가 글감이 될 수 있고, 내 편견과 한계만 넘어선다면 얼마든지 글이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줬다. 책 중간중간 주인공의 허세와 고정관념을 뒤집는 반전 장면은 웃음을 절로 자아낸다.

창작을 업으로 하는 소설가나 만화가 시인 등 작가는 닮은 점이 있다. 하나의 작은 소재에서도 고구마 줄기 캐듯 글을 뽑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2014년 작고할 때까지 꾸준히 작품을 남긴 김종철 시인은 ‘못의 시인’으로 불린다. 못과 관련한 연작으로 유명하다. 그의 유작을 보면 못 하나에 담지 못할 글이 없었다.

글감이 없다고 불평하기 전, 굳어버린 내 사고의 틀을 깨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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