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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침대가 좁아요

여섯 살 난 첫째 녀석이 엄마 아빠와 따로 자기 시작한 건 세 살인가 네 살 무렵부터다. 물론 재울 때는 아직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 아내는 작은 방에서 아이가 잠들면 다시 큰 방으로 오는 시스템이다.

아이는 아직도 자다가 깨서 엄마가 없으면 허전한가 보다. 아빠 엄마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 큰 방으로 건너올 때가 많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서 말이다. 언제든 달려들면 포근히 안길 수 있는, 엄마 품은 그런 곳이다. 자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어 눈을 떠보면, 녀석이 떡하니 엄마와 아빠 중간에 와서 자고 있다. 침대 가장자리에 와서 누운 아이가 떨어질까 봐, 엄마가 중간으로 이동시켜 놓은 것이다. 비몽사몽인 아이 스스로 엄마 아빠 중간으로 파고들 정도의 정신력이 되지는 않는다.

어제는 잠에서 깬 아이가 괴물이 무섭다면서 흐느끼며 달려왔다.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를 들으니, 자기 전 괴물이 등장하는 동화책을 읽었나 보다. 혹시나 괴물이 덤벼들지나 않을지, 그게 무서웠던 거다. 아내는 아이를 쓰다듬고 어루만져 준다. 아이는 평소보다 더 찰싹 엄마에게 달라붙는다. 캥거루 주머니에 쏙 들어간 새끼 캥거루 같다.

초등학교 때, 비가 오던 날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집에 들어가, 자고 있던 엄마 품에 쏙 안겼던 기억이 있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그랬는지 엄마 품은 어느 때보다 포근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그 날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 엄마 품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괴물이 무서웠던 아이는 어느덧 곤히 잠들었다. 이른 아침 출근을 앞두고 새벽잠을 깼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 엄마 품으로 달려온 아이 덕분에, 아빠는 아이의 온기를 덤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잠든 아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험한 세상, 이 아이가 헤쳐나가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을까. 그때 오늘의 포근함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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