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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육아아아하

아이와 놀면서 배운다. 생각 놀이와 등산 대화

◇생각 놀이

아이들 재울 시간이 다가오면서 블록 놀이, 그림 그리기, 숨바꼭질, 책 읽어주기 등 몸으로 하는 놀이에 지치고 힘들 때쯤 ‘생각 놀이’를 추천한다. 이 놀이는 사실 혈기 왕성한 여섯 살 첫째 녀석과 놀아주기 힘들어서 궁여지책으로 꺼낸 건데 생각보다 아이의 반응도 좋고, 효과도 괜찮다. 무엇보다 누워서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지친 아빠에게는.

방식은 간단하다. 생각 놀이를 하자고 하면서 아이와 둘이 눕는다. 아빠가 먼저 시범을 보여준다. "낮에 놀았던 공원에서 가운데 분수 있는 곳이 갑자기 갈라지는 거야. 거기서 공룡 한 마리가 번쩍 나오더니, 옆에 있던 멍멍이를 보고 ‘으허헝’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멍멍이가 놀라서 슝 날아가더니 산속으로 숨어 버렸어."(아이는 요즘 공룡에 꽂혀 있다. 뭐든 관심사를 소재로 등장시키면 좋다). 그러면 아이가 받아서 이번엔 아이 차례다. "나는 그 공원에서 놀고 있는데 사자가 한 마리 나타났어. 깜짝 놀라서 도망가는데 갑자기 내 앞에서 공룡이 나타나더니 사자랑 막 싸우기 시작하는 거야". 다시 내 차례다. "그랬더니 공룡이 사자를 잡아버린 거야. 아빠는 조용히 옆에서 살금살금 도망갔지. 그 공룡이 처음에는 아빠를 안 따라오더니 사자랑 싸우고 나서는 다시 아빠한테 오는 거야. 무서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소방차가 위용위용하고 와서는 아빠를 구해줬어."

아이는 아빠를 따라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친다. 몇 번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아이 웃음보가 빵빵 터진다. 생각 놀이는 상상을 자극하는 데 그만이다.



◇등산 대화

자연을 벗 삼아 놀 때 아이와의 대화가 정말 유용하다는 걸 느꼈다. 오늘 아침도 첫째 녀석을 데리고 뒷산에 올랐다. 네 살배기 딸에게도 기회를 줬지만, 산에 오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있다. 가르친 것도 아닌데, 아들과 딸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몸으로 놀기를 좋아하는 아들, 곰실곰실 엄마와 놀기를 좋아하는 딸.

여하튼 그렇게 딸의 동의를 구하고, 아들만 데리고 1시간 반 정도 등산했다. 비탈진 곳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재미있었던지 아이가 묻는다. "뿌리가 왜 이렇게 많아." 나무 위를 보여줬다. "나무가 이렇게 높잖아. 높이 올라가려면 뿌리가 넓게, 또 깊이 박혀야 돼"

계속 오르다 보면 공원과 집이 멀리 보이면서 점점 동네가 훤히 시야에 들어온다. 아이가 말한다. "꼭대기에 오르면 우리 아파트랑 동네 다 보이겠다." 그럼 나는 "응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볼 수 있어."

오르막을 가다가 내리막이 나오는 걸 보고는 "산꼭대기도 아닌데 왜 내리막이 나와?". "응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다가 다시 오르막이 나오기도 해"

정상에 오를수록 바위가 많이 나왔다. 위에 올라오니 바위가 왜 이렇게 많으냐고 묻는다. 손으로 산 모양인 삼각형을 만들어 보여주면서 "위에 있을수록 비도 많이 맞고 하니까 깎여서 그래. 위에서 깎인 흙이 밑으로 내려가니까 위에는 바위가 많고, 밑에는 흙이 많은 거야"

나무에서 떨어진 솔잎, 낙엽은 어느덧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무에 달린 건 아직 푸르게 싱싱함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왜 색이 다르냐고 묻는다. "나뭇잎은 뿌리랑 줄기에서 물을 받아서 사는데, 떨어졌으니 죽어가는 거야. 죽으면 시들고, 색도 변하고, 거름이 돼서 나중에는 흙으로 다 돌아가게 돼"

아직 아이와 인생을 논할 때는 아니지만, 대화 자체가 인생의 여러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아이가 커서 여러 난관을 만나거나 도전해야 할 과제에 직면할 때 이렇게 산을 오르면서 아빠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지 않을지.

나 역시 오늘 아이와의 등산 대화를 통해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파묻혀 있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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