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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차 사고를 겪으며 느낀 꽁짜 심리

첫 경험이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이런 기분이구나.

어제 접촉 사고가 났다. 상대방 과실 100%.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려다 직진 차로에서 택시가 쌩하니 달리는 통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예측 출발을 한 뒤차가 뒤늦게 내가 정지한 걸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한발 늦은 상황이었다.

사실 쿵 하는 소리가 난 찰나엔 이런 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뭐지? 뒤차 운전자가 비상깜빡이를 켜고 내 차로 올 때야 상황이 이해가 됐다. 운전한 지 28개월쯤 됐는데 첫 사고였다. 그쪽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첫 경험이었던 둘은 어디선가 주워들은 메뉴얼 대로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각자의 보험사에 연락했다. 차를 안전한 곳에 대비시키고 나서 15분여 뒤 양측의 보험사 직원이 약속이나 한 듯 도착해 모든 걸 해결해 줬다. 상대방 측 보험사에서 신속하게 렌트 차량을 보내줬고, 내 차는 사업소에 입고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할 만큼의 여유를 가질 정도로 내 피해는 크지 않았다. 살짝 부딪혔는데도 이 정도 소리와 충격이면 제대로 박았을 땐 어마어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별로 없어도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더라. 그래서 오늘 오후 정형외과에 들렀다. 상대방 측 접수번호를 대니 모든 게 프리패스다. 결제도 그쪽 보험사에서 바로바로 해 준다. 나는 꽁짜로 치료만 받으면 되더라.

‘뒷목 잡기’ ‘무조건 입원하기’ ‘합의 때까지 버티기’ 등 말로만 듣던 꽁짜 심리의 유혹은 내 치료비가 하나도 들지 않을 때 생기는 것 같다. 엑스레이 촬영에서 드러날 정도의 외상, 다시 말해 뼈가 부러지거나 어긋나는 정도의 상태는 중상에 속한다. 엑스레이로 판별되지 않은 정도의 외상은, 의사의 설명을 빌리자면 근육이 놀라는 수준이다. 근육이라는 말랑말랑한 녀석은 사실 심하게 뻐근한지, 가볍게 뭉쳤는지 본인의 진술이 아니면 확인이 쉽지 않다. ‘아이고 죽겠네’ 누워버리면 판별이 쉽지 않다. 상대 과실 100%로 치료비가 저쪽 부담이 되니, 꽁짜 심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분이다. ‘내 돈 내는 것도 아닌데 몇 날 며칠 물리치료나 실컷 받아봐?’ 

하지만 과감히 접었다. 누워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 데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상태에 따라 정확하게 진단을 받고, 정당한 피해 보상이 오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도보다 더 아픈 사람이 ‘무작정 뒷목 잡기’라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되고, 반대로 덜 아픈 사람이 과도한 보상을 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런 건 사실 운전자 간 신뢰가 정착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상대방 측에서 오전에 문자가 왔다. ‘괜찮으시냐’고. 나는 ‘큰 이상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 한 번 받아보려고 한다’며 ‘신경 써 줘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도 좀 걱정이 됐을 거 같다. 여러 경로를 통해 피해자가 무작정 입원해 버리고, 며칠씩 끌 수도 있다는 말을 주변서 꽤 들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혹하는 방법을 전하는 이가 있었다.

좋은 경험이다. 무엇보다 사고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의 값진 경험이라 다행이다. 크게 다쳤다면 이렇게 글도 쓰기 어려웠겠지. 꽁짜 치료 없어도 되니, 부디 이런 사고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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