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 세상
ⓒ주간경향
[우리시대의 새로운 공간]고독한 솔로 아닌 나를 위한 시간 ‘혼밥식당’ (원문보기)
수험생 시절,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독서실을 선택했던 적이 있다. 아늑한 분위기에 칸막이가 처져 있어 몰입이 잘 됐다. 그렇게 며칠 잘 보내는 듯싶었지만 답답함이 몰려왔다. 사방을 둘러봐도 뒤통수만 빼면 벽이었다. 독서실 안에 다른 수험생도 물론 있었지만 더불어 공부한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독서실비가 아까웠지만, 보름 정도 다니다 도서관으로 전향했다.
도서관은 내 스타일에 훨씬 잘 맞았다. 도서관은 실내 넓은 공간에 칸막이 없는 뻥 뚫린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공부를 했다. 옆 사람 앞사람 그 옆 사람 그 옆 옆 사람이 공부하는 모습, 조는 모습, 코 파는 모습, 부스럭거리는 모습이 다 보였다. 다소 집중력이 흐트러질 요소는 있었지만 공부하는 맛이 났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그들의 노력하는 자세에 도전을 받기도 했다.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될 때면 주위 수험생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기분 전환으로 삼았다. 어떤 수험생은 독서실이 도서관보다 집중이 잘 된다고 하지만 나는 도서관 쪽이었다.
너무 집중할 수 있는 환경보다 조금 느슨한 집중 환경이 오히려 집중도를 높여주는 효과랄까. 예전엔 몰랐지만 이런 용어가 최근에 등장한 걸 보면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카페 안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이나 주위 테이블의 작은 대화 소리가 뒤섞인 백색소음(화이트 노이즈·적절한 수준의 소음)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백색소음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언급했던 ‘도서관 효과’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까.
백색소음이나 도서관 효과는 단순히 집중도 측면에서만 볼 게 아니다.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혼자서 공부를 하든 커피를 마시든 칸막이 안에서 하는 것은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서 편리함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서에는 썩 좋지 않다. 태초 이래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설계됐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 칸막이 속에서 독처하는 것은 장기화되면 그래서 좋지 않다. 고시를 하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든 3~4년이 넘어가면 만류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시험 낙방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지만, 정서에 미칠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 인식은 사실 최근 부쩍 늘고 있는 ‘혼밥’ 식당 때문에 가지게 됐다. 혼밥은 혼자 밥을 먹는다는 뜻의 신조어로 이들을 위한 식당이 곳곳에 늘고 있단다. 칸막이가 처져 있는 독서실 분위기의 식당. 혼자 와서 조용히 먹고 갈 수 있고, 주변 사람을 의식을 최소화한 구조다. 종업원과의 접촉도 최소한으로 줄여 말 그대로 혼자 와서 혼자 먹고 갈 수 있도록 최적화됐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느는 사회 변화에 발맞춘 당연한 결과다. 사실 나 역시 혼자 밥 먹는 일이 있을 때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기 눈치 보인 적이 많았던 터라 이런 식당이 편리할 것 같긴 하다. 그런 편리함 때문인지 혼술(혼자 먹는 술), 혼행(혼자 하는 여행) 등 다양한 상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명칭을 사용한 정당도 나왔는데 언젠가 ‘나홀로’라는 수식어를 가진 정당도 등장할 판이다. 글쎄다. 어찌할 수 없는 추세이고, 사실 사회 변화에 발맞춘 당연한 결과인데 어쩐지 씁쓸하다. 갈수록 칸막이가 늘어나는 세상. 대면 관계에선 칸막이를 친 채,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세상.
오늘은 ‘혼밥 세상’을 향해 소심한 저항을 해야겠다. 홀로 혼밥 식당이 아닌, 사람이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 과감하게 메뉴를 주문하고, 밥을 먹으며 주위 테이블을 한 번 둘러보는 여유도 가져야겠다. 너무 두리번거려 이상한 사람 소리 듣지 않는 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