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가을을 맞이하며
준비도 안 돼 있는데 가을이 너무 갑작스레 다가왔다. 언젠가 오겠지 했다가도 막상 예고 없이 찾아와 버리니 불청객이 따로 없다.
처가에 내려간 아내는 아이들이 며칠 새 훌쩍 커버렸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그렇게 생떼를 쓰던 녀석이 이제 말로 타이르면 통한단다. 아이의 생떼를 못 견뎌 성질 부렸던 것이 얼마 전인데, 아이는 못 보던 며칠 동안 그렇게 커버렸다. 대견스럽다. 하지만 아직 이전보다 성장한 모습을 볼 준비가 안 돼 있는데 그 시간이 너무 빨리 다가와 버린 느낌이다.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나 빠르다. 산울림의 <청춘>에서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는 가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자명한 이치다. 성경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봐도 죽음은 이처럼 단호하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암 판정을 받고 1년도 채 안 된 분이었다. 그렇게 떠났다. 60여 년의 생을 정리하기에 1년도 안 되는 시간은 너무나 짧다. 아니지, 설사 2년 3년이 주어진다고 해도 정리가 됐을까. 생을 위한 몸부림과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실낱같은 희망에 더 기대고 싶어질 것이다. 죽음은 준비할 시간과 상관없이 불청객처럼 그렇게 와 버리는 존재다.
화장장에서 관 뚜껑이 나와 그 사이를 가로막은 거리는 지척이라도 아득했다. 이생과 저 생의 간격은 항하사,아승기,나유타,불가사의,무량대수의 단위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3일 장례를 통해 주변에서 아무리 눈물과 애환을 쏟아 내도 차마 이생의 미련까지 대신 떨쳐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마음의 준비를 하든 안 하든, 불청객 대우를 하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느 때 찾아오더라도 후회야 없겠느냐만 적어도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불쑥 찾아온 가을을 두고 떠나간 여름을 아쉬워만 하고 있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