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의 변천.. 이름을 내건다는 건..
자주 가던 동네 만화방은 대체로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간판 옆에 이름이 조그맣게 달려 있었던 게 분명하다. 기억에 남는 건 단지 ‘만화’라는 칙칙한 간판, 더 깊숙이 들어가면 ‘24시 만화’ ‘00동 만화’ 정도가 전부다. 만화방은 그렇고 그런 의자와 다소 쿰쿰한 환경에 라면이나 과자 음료를 파는, 어느 만화방이나 비슷한 환경이었다.
요즘엔 만화방이 진화했다. 칙칙한 추억 속 만화방이 아니다. 홍대 쪽에만 해도 ‘즐거운 작당’이니 ‘연남동 만화왕’, ‘망원만방’, ‘딩굴딩굴 알타미라’ 등 다양한 이름을 내건 세련된 만화방이 생겼다. 여긴 또 만화방이라 하지 않고 만화카페라 부른다. ‘만화’라는 명칭은 사용하지도 않은 채 고유명사인 이름만 내건 자신감을 갖춘 가게가 있고, 프랜차이즈도 등장했다.
만화 마니아라면 예전엔 "만화방 가자"라고 하면 충분했을 텐데 요즘엔 아마도 "‘즐거운 작당’ 갈까"라고 해야 할 듯싶다. 과거엔 손님의 1차원적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것에 그쳤다. 만화 읽기, 짜장면·간짜장·볶음밥 시켜 먹기, 맛동산과 웰체스 먹기, 19금 성인만화 쌓아놓고 보기 등등이다. 이것만 충족돼도 사실 훌륭하다. 요즘 이름을 내건 만화방들은 여기에 더해 휴식의 의미까지 가미했다. 의자에 앉아서, 의자에 기대서만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누워서 볼 수도 있고, 해먹 스타일 자리에서 흔들거리며 볼 수도 있다. 좀 더 적극적인 곳은 문화공간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개별 만화방의 브랜드화. 만화방으로 묻어가지 않고 자신만의 이름을 내건다는 건 무기가 있다는 뜻이다.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이름은 그래서 의미를 가진다.
김춘수의 시를 외람되게 잠시 빌리자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 그 이름이 입소문과 블로그를 타고 먼저 나에게 다가와 내 발길을 만화공간으로 향하게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줄 만한 차별화된 무언가를 나는 가졌는가.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무엇이 되려고, 보라는 만화는 안 보고 이리 발버둥 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