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이면주차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책장에서 문득 생각난 책을 찾으려면 앞쪽에 놓인 책들에 양해를 구하고 뺐다 꽂았다 몇 차례를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미뤄뒀던 책 구조조정 시점이 다가온 것을 직감했다.
책 솎아내기를 시작했다. 우선 문학 월간지가 대상이 됐다. 새로운 월간지가 늘 나오기 때문에 굳이 보관해 두고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 실용서다. 한번 읽고 자극이 되긴 했지만 소장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회과학 서적 중에서는 한 때 유행을 타고 만 책들이 빠져나왔다. 당시엔 이슈가 됐지만 언젠가 다시 찾아볼 만한 보편적 이론을 담은 것 같진 않았다. 베스트셀러 역시 일부는 포함됐다. ‘베스트셀러=소장’이라는 공식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에세이 중에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담지 않은 말랑말랑한 책들이 자연스레 추려졌다. 구조조정하면서 보니 에세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그동안 가벼운 에세이를 주로 썼는데, 고민이 생기더라. 알랭 드 보통이 추천했던 롤랑 바르트나 몽테뉴의 글처럼 이제는 좀 깊이가 담긴 수필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우다 보니 앞으로 사야 할 책이 보이더라. 사문철 중에서 우선 역사와 철학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문학 중에서도 고전은 살고, 시류에 편승한 현대 문학 일부가 구조 조정됐다.
앞으로는 유명하다고 무조건 구매하기보다 남길 만한 책, 즉 다시 볼 가치가 있는 책을 사야겠다. 또 하나, ‘무조건 출판을 하고 보자’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누군가의 서재에 남길 만한 책을 써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나저나 저렇게 뽑아내도 아직 이면주차는 해결되지 않았다. 책장을 더 들여놔야 하나, 구조조정 기준을 높여야 하나 고민이다. 아내는 책장이 늘어나는 것에는 분명 반대할 것 같다.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