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브라더 2016. 12. 16. 09:55

내 키보드


열 개의 손가락이 모여,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다.

내 생각이 모니터 위 백지 위에 글씨로 하나둘 하나둘 찍힐 때마다 이게 과연 내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 내 손이 나도 모르게 만들어낸 생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백지를 대하면, 설렘이 있다. 이 백지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생각할 수 있어 좋다. 머리가 아니면 손가락이라도 생각한다. 손가락도 백지를 채우는 그 느낌을 안다.


내 페북 화면 중...


백지를 위협하는 움직임도 있다. 페이스북에는 언젠가부터 백지를 허용하지 않았다. 글을 쓰기도 전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엄포를 놓는다. 아무 생각 없이 자판을 두드리면 안 되는 것인가? 꼭 생각을 해야만 하나. 때론 멍하게 있고 싶기도 한데, 페이스북 네가 뭐라고 내 생각을 강요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 놀음이나 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 간만에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가한 오전을 보내는 게 얼마 만인지. 그래서 사람은 이런 여유도 필요하다. 항상 심각한 글만 쓸 수는 없다. 생각이 가리키는 대로, 손가락이 찍히는 대로 한 번씩 글도 써야 한다. 여유는 이처럼 중요하다.


멍 때리기! 내 취미 중 하나였는데,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빡빡한 세상 너무 심각한 생각만 하지 말자. 눈에 켜 둔 불을 잠시 끄기도 하자. 이미 시작된 겨울이지만 가을의 끝자락을 움켜쥐자. 떨어지는 마지막 낙엽의 소리를 듣자. 멍한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