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시사스러운

신상과 중고-안철수의 탈당

낭만브라더 2015. 12. 13. 22:17

 

안철수가 '신상'이었던 시절인 2012년 나온 '안철수의 생각'

 

신상과 중고

 

 안철수가 처음으로 정치인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세상에 나온 2011년엔 그야말로 신상(新商)이었다. 안철수의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이 기사가 됐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와의 단일화, 그의 침묵, 그의 생각(안철수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 그의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 모든 게 신상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의 한마디는 정치권에 비수로 꽂혔다. 안철수를 경험해본 사람이 없었기에 그의 행보에 대한 평가도, 그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도 다소 제각각이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상을 처음 접하다 보니 쓰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렸고, 참고할 만한 '블로그'도 없었다. 2012년 말 대선은 중고(中古) 정치인, 중고 후보들이 가득한 정치권에 신상이 던지는 참신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가 비록 주연을 달진 못했지만 주연에 버금가는 배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신상이 나온지 4년이 훌쩍 지났다. 정치권은 초선 의원도 4년은 가는, 비교적 신상에서 중고로 넘어가는 시간이 길다는 평가를 받지만 안철수처럼 야당의 대표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의 4년이라면 중고 반열에 끼기에 넉넉한 시간이다. 이런 중고 안철수가 13일 야권을 한번 뒤집는, 크게 보면 정치권을 혼돈에 빠뜨리는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기자회견을 가졌다.

 

 4년 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다. 결론적으로 보면 신상과 중고의 차이라고나 할까. 중량감에서 일단 다르다. 4년 전 안철수의 행보 자체는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도 분명 위협이었다. 하지만 이날 안철수의 기자회견으로 야당은 혼란스런 모습이지만 여권은 표정관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총선을 앞두고 제 1 야당의 분열이라. 이 정치 실험은 일단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점쳐지기 때문에 여당으로선 호재다. 또 하나, 그의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가 이제는 좀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대체적인 평가는 '탈당 자체로선 가늠하기 힘들고, 연쇄 탈당이 어느 정도 일어나느냐에 따라 메가톤급 파워가 될지 미풍에 그칠지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상시절) 그의 행보 자체보다 (중고시절) 그의 행보 이후 연쇄반응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됐다.


 

  4년 전과 차이가 나는 또 하나는 신상을 찾던 사람들과 중고를 찾는 사람들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신상일 때 사람들의 기대는 남달랐다. 그의 주변에 어떤 참신한 인재들이 모여들까 궁금증을 자아냈다. 실제 여야에서 나름 참신해 보인다는 인물들, 젊은 정치 지망생들이 안철수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결과적으론 낭패였지만.) 이제 탈당을 한 그의 주변에 몰려드는 인재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그런 면에서 오늘 진중권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안철수에겐 뼈아프다. 진 교수는 이날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사실 안철수 옆에 한때 괜찮은 분들이 계셨죠. 하지만 그분들, 하나둘씩 스스로 다 내친 것으로 기억한다. 누가 그의 곁으로 가려고 하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 혁신을 누구랑 할까요’라면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야권 중진 이름들을 거론했다. 신상 곁에 몰려든 나름 참신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앞으로는 정치권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기성 정치인들이 모일 것만은 분명하다. 아니라고? 그의 곁에 모여들 참신한 인재들 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고는 가격이나 가치가 신상에 비해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중고가 유일하게 빛을 발할 때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희소성을 가질 때다. 아무리 중고라도 희귀 제품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다. ‘응답하라 1988’ 제작진들이 88년 당시 제품들을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제작비를 쓴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중고는 중고지만 희소성을 가질 때 상품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철수에겐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저 몇 년 지나 버린 일반적 중고인지, 아니면 그가 말하는 ‘혁신’의 가치가 진정 희소성을 가진 가치인지를 확인할 시험대. 안철수는 그런 면에서 이제 진짜 정치를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그냥 중고로 끝날 확률이 높아보이지만, 혹시나. 혹시라도, 진짜 혹시라도 내가 알지 못했던 진정한 혁신의 가치를 안철수가 가지고 있다면, 이 난국을 잘 돌파해 나가 희소성 있는 가치인 '혁신'을 잘 실현해 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