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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우리나라 대법관 편향은 미국에 비하면 양반?

지난해 8월 이기택 대법관 인사청문회 때 여야 의원들이 일제히 대법관 출신의 편향성을 지적했습니다. 14명 대법관 중 13명이 판사 출신, 12명이 서울대 출신, 12명이 남성이라는 이유였죠. 그렇다면 미국 연방 대법원은 어떨까요? 지난해 6월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한 판결문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눈에 띄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미국 대법원의 편향성은 한국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거죠.


헌법재판연구원 사이트 헌법판례동향(https://goo.gl/8ymx2d)에 들어가면

이 사건뿐 아니라 세계 주요 판결 번역본을 읽을 수 있다


당시 대법관 9명 중 5명이 다수 의견으로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내렸고, 대법원장 Roberts를 포함해 4명이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소수의견을 낸 4명의 대법관들은 다수 의견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렇게 비판하고도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우리 헌법재판소는 반대 의견을 내더라도 다수 의견에 대한 ‘예의’는 갖추게 마련인데, 미국 대법관들은 정말 대놓고 비판을 하네요. 잘 보면 ‘판결 같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는 취지로 상대의 판결을 비판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소수 의견을 낸 Scalia 대법관은 동성결혼이라는 법이 아닌 정책적 문제를 미국을 대표하지 않는 9명의 대법관들이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라고 비판하죠. 그러면서 9명이 왜 미국을 대표하지 않는지 이유를 듭니다.

 Scalia 대법관의 소수 의견 중에서

우리 법원은 단지 9명의 남녀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모두 하버드 또는 예일 로스쿨에서 공부했던 성공적인 법률가이다. 9명 중 4명은 뉴욕시 태생이다. 9명 중 8명은 미국의 서해안이나 동해안에서 자랐다. 오직 1명만이 광활한 중간지역에서 태어났고 남서부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한명도 없으며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미국인의 1/4을 차지하는 그룹이다.) 심지어 어떤 교파의 개신교도도 없다.


명문 로스쿨이 즐비한 미국에서 단지 2개의 학교 출신들이 대법관을 구성하고 있고, 태생이나 종교 역시 편향적이죠. 앞으로 우리나라 대법관 후보자가 또 서울대, 판사 출신이 지명되면 이걸 반박 근거로 삼는 거 아닌가요 이거? ㅎㅎ



어쨌든 이 판결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헌재가 당면한 고민도 상당 부분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입법부가 만든 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 결국 사법권이 선출로 뽑힌 입법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죠. 헌재가 갈수록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이 판결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에서도 이 부분이 대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수 의견은 기본권의 경우에는 입법권을 넘어선다고 보는 반면 소수 의견은 법관들이 그런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고 판시했습니다. 


다수 의견 

개인이 기본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 전에 입법조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 헌법체계의 역학이다. 국가의 법원은 자신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이해관계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개인은 비록 다수의 대중이 동의하지 않고 입법부가 입법을 거절한다 해도 그가 피해를 입었을 때 헌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활용할 수 있다. 헌법의 목적은 특정 주제를 정치적 논란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켜, 다수와 공무원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법원이 적용할 수 있는 법적 원칙들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권이 투표의 대상이 아닌 이유이다. 기본권은 어떤 선거의 결과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소수 의견 

법원이 자신들의 정책판단을 헌법적으로 보호되는 자유의 지위로 승격시키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법원을 의회로 여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우리 법원은 그 오류를 인정하게 되었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법원은 그들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믿음으로 입법부의 판단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원래의 헌법적 명제로 돌아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소수 의견을 낸 대법원장의 마지막 결론이 인상적입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다수 의견 자신의 신념에 의존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헌법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어 버린 것이죠. 

만일 당신이 동성결혼의 확대를 지지하는 많은 미국인들 중 한 명이라면 오늘의 결정을 기념하라. 바랐던 목표의 달성과 파트너에 대한 새로운 헌신의 표현의 기회와 새로운 혜택의 가능성을 기념하라. 그러나 헌법을 기념하지는 말라. 헌법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나는 정중하게 반대한다.


이처럼 입법권과 사법권의 충돌 문제는 우리 대법원이나 헌재에서도 앞으로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