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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육아아아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에 갔다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에 갔다. 물론 가정의 불화가 있어서 도피하러 간 건 아니다.ㅋ 이번 금요일 첫째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당분간은 방학이 아니고서는 지방에 내려가기 어렵기 때문에, 또 첫 손자와 손녀를 끔찍이 아끼시는 장인 장모님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내려갔다. 퇴근 후 ‘꺅’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모습과 항상 미소로 반겨주는 아내를 며칠 간 못 본다는 쓸쓸함과 집에 홀로 있다는 적막함이 있지만, 오래간만에 찾아온 ‘자유’가 주는 행복과 여유로움과 소소한 기쁨....을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오늘은 출근도 하지 않는 날이다. 꺄옷.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또 실천. 1박 2일 기억에 남을 만한 몇 가지 흔적을 남겨 본다.

 

●멍하게 시간 보내기, 멍하게 TV 보기
월요일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마다 마감에 쫓기고, 데드라인을 앞두고 늘 초긴장의 시간을 보내곤 한다. 백수 시절엔 멍하게 시간 보내는 것이 죄책감이 들었지만 치열한 현장에 있다 보니 멍 때리기가 이렇게 삶에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그냥 시간을 보냈다. TV를 켜고 신 나게 채널을 돌렸다. 별별 프로가 다 있구나 싶었다. 가요 프로 등 별생각 없이 TV를 보다가 또 무심코 생각이 필요한 채널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tvN에서 하는 대학 토론 배틀을 봤다. 4강전이었다. 처음엔 ‘정말 말 잘한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말을 빠르게 한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주제를 잘 몰라서도 아니었다. 토론 주제 중 하나였던 ‘보호처분’이나 ‘40대와 여중생 성관계’ 등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봤던 내용이다.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 ‘내공’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기성 토론 프로나 요즘 ‘썰전’만 봐도 쏙쏙 이해될 때가 있다. 내공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보고 싶었던 영화 보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봤다. 전부터 보려다가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디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 소식도 들리고 해서 관람.(외래오 표기법상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고 한다. 언론에서도 이렇게 쓰고 있다. 이탈리아어식으로 적으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인데 미국인이라 영어식으로 이렇게 표기하는 게 맞다고 하는데, 영 어색하다. 그냥 이 정도 유명한 인사는 고유 명사 취급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생존, 치열, 극한, 본능, 죽음…. 여러 단어가 떠올랐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언제봐도 ‘쏴라 있네’다 싶을 정도. 오스카가 제 주인을 찾아간 듯. 영화에서 물론 ‘그 추운 날씨에 물에 저렇게 오래 있으면 저체온증에 걸리진 않을까’ ‘부러진 다리가 저렇게 빨리 봉합이 될까’ 등의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역시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생존 및 복수 본능이 이 모든 걸 뛰어넘을 정도로 강렬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갔다. 게다가 수상 소감에서 상 자체보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디카프리오, "기후변화는 현실입니다. 전 인류와 동물을 위협하는 가장 긴급한 사안이며 힘을 합쳐 지금 그 방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구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저도 오늘 밤 이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멋지다. 우리 시상식도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좀 탈피할 때도 됐다 싶다.

 

책을 읽다 말았는데 마저 읽고, 영화와 비교해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쓴 마이클 푼케가 2009년 WTO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된 외교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창작, 집필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극이 됐다.

 

●청설빨
청소, 설거지, 빨래는 매일 하면 노동이지만 한 번씩 하면 기분전환이 된다. 물론 평소에도 한다. 하지만 일상에선 청소하면 곧바로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도배되지만, 이번 청소는 감상 시간이 길어서 보람차다. 깨끗하게 청소한 집안을 보면 상쾌.

 

 

●등산
집 뒤에 있는 관악산에 올랐다. 눈이 쌓인 등산로를 따라 한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이래저래 흩어졌던 생각들이 정리된다. 관악산의 청명한 공기는 보너스. 산을 끼고 집을 구하다 보니 이제 시끌벅적한 도심에선 못살 것 같다. 교통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공기 좋은 산 주변에서 살련다 재다짐.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그림자와 인사도 하고. 감상평은 사진으로 대체

 

 

●블로그
테이블엔 노트북과 맛동산이 올려져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김동률과 이문세, 신해철 노래가 연이어 흘러나온다. 그러면서 블로그를 끄적인다.

 

이런 감흥도 한 번씩 느껴야 제맛이다. 이것은 마치 백수일 땐 1년에 한 번있는 2박 3일의 동원훈련이 귀찮았지만 바삐 돌아가는 현장에 있을 땐 동원훈련이 언제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후 시간은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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