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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1월 1일은 달력의 한 모서리를 깔끔하게 차지한다는 사실


1월의 첫날이라 그런가. 달력을 유심히 봤다. 평소엔 그저 스캐줄을 확인하고, 휴가까지 남은 날을 계산하기 위해 슬쩍슬쩍 보던 달력이다.
무심코 주의 깊게 바라본 달력, 출발이 썩 나쁘지 않음을 느낀다.


사각형의 한쪽 모서리를 정확히 차지하고 있다. 깔끔한 출발이라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 없는 스타트, 기름을 쏙 뺀 담백한 맛, 각 잡힌 정교함과 절도 있는 행동에 비견할 만하다. 1월, 1년의 첫날은 이토록 정갈스럽다.
잔뜩 계획을 세우고, 다짐이라는 다짐은 죄다 박아 놓는 첫날의 그 결기를 잘 대변해준다. 인간인지라 사실 하루 이틀 지나면 조금씩 흐트러진다. 군데군데 쓸데없는 것들이 붙기 시작하고, 기름이 발리고, 각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3일이라도 기세를 유지하면 좋으련만, 작심삼일. ‘새해도 역시 안 되는구나’


이 고민은 출처가 어디부터인지 사실 불분명하다. 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방학 때인가. 잔뜩 희망 사항을 쑤셔 놓다 보면 잠잘 시간은 고작 4~5시간으로 줄어든다. 빡빡한 계획표를 그려놓고 스파르타식 24시간을 다짐하지만 그때뿐. ‘다(多)짐’이라 그런지 ‘다(多)’ 떠나가버리고 마음의 ‘짐’만 남는다. 문제는 철들고 나서도 별반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 고민은 아마도 노년이 돼서도 여전할지 모른다. 억울할 것도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인데 작심삼일의 본성이 어디 가겠나.


요 몇 년 이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나만의 해법에 도달했다. 37살(벌써. 마흔을 바라볼 나이가 되다니!)에 내가 얻은 해법은 뜻밖에 가까이 있다. 받아들임. 내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신념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냉혈한도 아니다. 20대 피가 들끓을 때는 사실 신념 충만할 때가 있었다. 그땐 충만함 만큼 자책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나라도 계획이 흐트러질 수 있다. 그렇다고 전체를 다 어그러뜨려서는 안 된다. 흐트러진 작심은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남은 다짐을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 삼 일 만에 흐트러진 작심은 다시금 세우면 된다. ‘작심삼일 122번이면 1년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빈말이 아님을 느낀다.


깔끔한 달력 속 1월 1일을 이제 조금 있으면 마무리한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지난해 세웠던 계획에서 약간은 흠집 난 부분이 있다. 너무 휘청대지 말아야겠다. 왠지 최고의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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