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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시사스러운

박 대통령의 서명운동 어떻게 봐야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경제계가 주도하는 ‘민생입법 촉구운동’에 동참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민간 서명운동에 동참한 첫 사례라고 하네요. 총리와 장관들도 줄줄이 서명에 나선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서명운동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이제 국민한테 직접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 이후 이를 행동에 옮긴 것인데, 국회를 거치지 않은 이 같은 ‘대국민 직접정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대통령이 직접 서명했기 때문에 당장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회를 압박하는 효과는 당연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문제 제기한 것처럼 삼권분립 국가에서, 국회에 입법 권한을 두는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박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입법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일 좀 해보려고 하는데 국회가 발목을 잡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니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또 별개의 문제죠. 여야가 협상이 안 된다고 여당과 야당이 각자 우리 갈 길 가겠다고 하면 ‘정치’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행정부는 국회내 협상의 당사자도 아니고, 입법부에 대응하는 다른 한 축일 뿐인데 어쨌든 국회에 협조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미우나 고우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이때 국회를 ‘하이패스’ 한 행정부의 오만함?


명분도 중요하지만,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극단적인 비유일지 모르지만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초헌법적 국가긴급권을 발동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면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유신헌법 때도 명분은 분명했습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민주주의 토착화, 자유경제질서확립, 자유와 평화수호의 재확인’이 기본 취지. 그러나 목적은 장기집권이었죠.


‘서명 운동한 거 가지고 유신헌법까지 들먹이다니 너무 확대 해석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최근 박 대통령이 보여준 대국회 인식은 그만큼 위험수위를 넘나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여전히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빌미를 준 입법부의 현실이 안타깝긴 하네요.


그렇다면 조간은 박 대통령의 이날 서명을 어떻게 봤을까요.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념 성향에 따라 나뉜 게 아니라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정치 시스템을 어떻게 보느냐, 민생법안 처리의 비중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판단 기준이 다른 것 같습니다.

 

조선, 한겨레 1면


서명운동을 부정적으로 다룬 19일자 조간(타이틀 제목 / 소제목 일부)

조선 1면 : 국회를 건너뛴 대통령 / 일부선 "제도 무시한 국회압박"

한겨레 1면 : 국회 설득은 않고 거리로 나선 박 대통령 / 야당 "대통령의 본분 망각 유감"

한국 8면 : 재계 ‘민생입법 촉구운동’에 서명한 朴 대통령 / 국회 압박 심판론 다시 제기, 장외 여론몰이 적절성 논란

경향 3면 : 재계 주도 서명운동을 ‘국민운동’으로 부풀린 대통령 

경향은 위에서 말했던 의회주의 시스템과는 다른 관점서 비판했네요. 재계가 주도하는 서명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운동으로 바꿔놓았다는 취지로. 한국은 중립적인 입장인 듯하다가 기사 후반으로 갈수록 비판적인 관점서 다뤘습니다.


국민, 동아 1면


긍정적으로 다룬 조간

동아 1면 : 국회 압박 ‘행동’ 나선 朴 대통령…입법촉구 서명운동 동참 / "노동 경제법 처리 안돼 너무 애타"

중앙 1면 : "민생법안 입법을" 박 대통령 ‘서명 정치’ / "오죽하면 국민이 나서겠나"

국민 1면(사진기사) : ‘경제 활성화 관련 입법 촉구’ 서명

서울 1면 : 朴 대통령, 입법촉구 1000만 서명 동참 / "국민·경제인의 마음 전달 기대"

세계 1면(사진기사) : 민생촉구 1000만 서명 동참 

동아는 하지만 사설에서는 '대통령이 입법 촉구 가두서명에 나선 초유의 사태'라고 비판했군요. 


저는 우야든동(‘어떻게 하든지’의 경상도 사투리ㅎㅎ) 국회에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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