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사/책책책

이어령 <지의 최전선>

 

지(知)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야전사령관 이어령 교수와 중앙일보 문화부장 출신 정형모 기자의 대담록이다. 이어령의 디지로그가 나온 지 10년이 됐는데 책 곳곳에 이어령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생활이 그대로 묻어났다.


서재에 6대의 컴퓨터, 1대의 노트북 등 7마리의 고양이(CAT·Computer Aided Thinking)를 키우고 있는 이어령의 사진은 놀라움 그 자체. 마인드젯, 에버노트와 드롭박스 등 사실 나도 사용은 하지만 생활화될 정도로 다루지는 않는 프로그램을 82세의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학이 사용하고 있었다. 기술밖에 없다고 해도 놀라겠으나 그의 인문학적 소양과 탐구 정신을 이전 책에서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그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얼마 전 문화일보 파워인터뷰에도 등장했던 이어령, 당시 인터뷰를 한 엄주엽 문화부장은 인터뷰 초반,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시인, 전 논설위원, 명예교수, 전 문화부 장관, 전 문학잡지 주간, 문명비평가, 문화기획자"라고 이어령이 이제껏 가졌던 직함들을 나열하기도 했다. 이어령의 책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이런 통찰력을 언제쯤 따라갈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생각에 남는 장면들

 

#지식이 짧아서인지 이어령이 88올림픽에서 굴렁쇠 소년을 기획한 의도가 ‘벽을 넘어 화합’이라는 메시지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누구나 화려한 퍼포먼스, 꽉 찬 공연을 상상한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올림픽 무대는 더욱 그럴 것이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대비되는 것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무대에 중국의 발명품이 소개되느라 채움을 넘어 과도한 느낌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더 분명하게 비교가 될 것이다. 인건비(?)와 부대비용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효과는 더했다.

#배트맨이 될 것이냐 박쥐가 될 것이냐 - 박쥐는 이편 저편 다 될 수 있다. 하지만 배트맨은 악과 싸워야 하는 한쪽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로마 길과 만리장성은 큰 차이가 없다. 로마 길은 통하는 길이고, 만리장성은 막히는 벽이다. 만리장성을 옆으로 눕히면 길이 된다. 길을 옆으로 세우면 만리장성이 된다.

#NO WHERE / NOW HERE - 두 단어는 띄어쓰기 하나 차이다.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 지금 여기가 된다.

 

지의 최전선에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이어령은 이 책에서 ‘이건 이거다’라고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현상들을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시야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어떤 이론이나 아이디어는 책으로 발간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요즘엔 전 세계 지식인들이 테드의 동영상처럼 와이어드(http://www.wired.com/)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론을 실시간으로 올린다고 한다. 와이어드라는 곳은 처음 들었다. 이 사이트에는 이어령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들어간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이런 유용한 사이트도 잘 찾아봐야겠다. 다짐!

 

어쨌든 서점에 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유용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