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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민망함을 딛고 계속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요즘 블로그에 글을 계속 쓰다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생각이 난다. 대입에 논술이 반영되면서 논술 과목이 생겼다. 과목이라 해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던 것은 아니고 어떤 주제가 던져지고 원고지 매수에 맞게 글을 써내는 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지도했는데 온갖 잡무에 시달리던 담임께서 50명 학생의 논술에 첨삭해줄 리도 만무했다.

 

한번은 학교가 어떤 업체와 계약을 맺었는지 돈을 내고 첨삭을 받았던 적이 있다. 학교 전체 학생의 평균이 나오고, 자신의 점수는 물론 등수까지 나오는 그런 계량화된 첨삭이었다. 평소 대충 논술을 써내던 동기들도 돈을 내고 받는 첫 첨삭이라 그런지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당시 나는 나름의 논술을 쓴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1주일에 한 번 논술을 써낼 때 질적인 면은 차치하고 적어도 분량은 채워서 낼 정도의 양적인 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첨삭을 은근 기대했다. 그러면서 논술을 힘들어하는 주변 친구에게 지도(?)를 해주는 여유도 부렸다. 논술 주제에 대해 "이런 방향으로 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쯤 뒤 첨삭과 함께 성적표가 날아왔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평균을 한참 밑돌아 최하위권이었다. 놀라운 것은 내가 지도해준 그 친구와 점수가 거의 비슷했다.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쥐뿔도 못 쓰는 놈이 남 가르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계량화된 평가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내가 아무리 글을 연마하고 닦아도 객관적인 평가는 최하위권. 뒤집을 기회도 없었다.

 

그래도 1주일 한 번 있는 그 논술시간 열심히 써냈다. 최하점을 받았다는 민망함에 좌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도 특유의 뻔뻔함이 있었나 보다. 업체가 나의 글을 몰라보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 교내 방송에서 내 이름이 호명됐다. 모 일간지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전국 고등학생 논술 평가에서 시상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도 놀라고, 반 친구들도 놀랐다. 그땐 몰랐었는데 담임이 가끔 논술을 읽어보고 잘 썼다 싶은 작품을 그리로 보냈다고 한다. 아주 큰 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간지에 선정이 됐다. 학교가 지방이다보니 친구들이 일간지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 했다. 서울 구경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저점을 받았던 민망함이 일순간 씻겨 내려가는 후련함이란. 내가 지도해줬던 그 친구 보는 것도 더 이상 민망하지 않았다. 그 날의 시상이 자극됐는지 더 열심히 글을 썼고, 지방지에서 주최하는 논술 대회에서는 큰 상을 받기도 했다.

 

때때로 내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때가 있다. 그래도 무식하게 밀고 나가다 보면 길이 열린다. 그때 만약 민망함에 그냥 주저앉았더라면 아마 내 직업도 갖지 못했을 테고, 이 블로그도 열리진 않았겠지.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누군가에겐 졸필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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