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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시사스러운

썼다 지운다 필리버스터

9일 전부터 필리버스터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언론뿐 아니라 각종 블로그에도 경쟁하듯 필리버스터 관련 글이 넘쳐났지만, 나는 글을 남길만큼 선뜻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야당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역사 발전, 민주주의 행진, 시민과의 소통' 등 필리버스터의 긍정적 취지를 이야기한다. 반면 여당은 '국정 발목잡기, 시간끌기, 총선용 선거운동' 등으로 폄하한다. 언론도 극명하게 갈려 필리버스터가 하루하루 지나는 국면마다 상반된 평가를 내놓는다. 필리버스터의 계기가 된 테러방지법에 대한 엇갈리는 입장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한쪽의 주장도 그저 흘려들을 만한 것이 없다. 비겁하게 보일 수 있지만 현재로선 내 사고가 양시론(兩是論)에 머무는 수준이다.

답답한 마음에 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로 예고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발언 때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찾았다.

9일차가 돼서인지 의장단과 의원, 방호원, 기자, 방청객 할 것 없이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겉모습은 피로감에 젖어 보였지만 이들은 각각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날의 필리버스터를 어떻게 기억할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정쟁이 걷히고 선입견과 들뜬 분위기가 사라지는 1년 뒤엔 판단을 내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날을 위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눈과 귀로 기억하고, 수첩에 기록했다.

2017년 3월 내 나름의 평가를 남길 때쯤엔 나도 민주주의도 한층 더 성숙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