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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팝송을 듣는 계기가 된 예기치 않은 사건

내가 팝송을 듣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부터로 기억한다. 예기치 않았던 일이 계기가 됐다. 그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참 신기하다. 우습기도 하다.


방학 때 중이염으로 몇 주 시내에 있는 병원에 다녔다. 한 두어 번 어머니를 따라갔다가 그 뒤부턴 혼자 갔다. 어린 마음에 시내에 혼자 나간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누군가 어깨동무를 했다. 헛, 말로만 듣던 ‘시내 형들’이었다. 오른쪽엔 키가 나보다 한 뼘 넘게 큰 형이, 왼쪽엔 그저 그런 체구의 형이 웃으며 나를 봤다.

 

태연하게 말을 건네는 형들, 어떻게 해야 하나. 신호가 바뀌고 우린 걸었다. 여지없는 동네 형, 동생 사이처럼 우린 걸었다. 순간 눈앞에 들어온 레코드 가게, 본능적으로 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황한 형들은 가게 밖에서 서성거렸고... 설마 가게까지 따라오진 않겠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겠단 생각에 두리번두리번. 웬 중학생이 들어왔나 싶어 살펴보던 음반 가게 사장님께서 뭐 찾는 게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없지. 음악엔 좀체 관심이 없었다. "뭐를 많이 들어요?", 중학생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아저씨가 하나를 추천해 줬다. 그 사이 시내 형들은 사라졌다. 아마도 내가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소정의 병원비와 용돈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나는 아저씨가 추천해준 CD를 사서 집에 왔다. 중학교에 들어가 I am a boy, you are a girl 수준의 영어밖에 모르던 나였지만 영어 가사를 몰라도 음악이 주는 감동은 충만하게 사춘기의 나에게 전달됐다.
그 CD는 ‘Grammy Nominees 1996’이었고, CD를 재생하면 제일 먼저 나왔던 음악이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Boyz II Men의 ‘one sweet day’였다.

 

출처 : 네이버 뮤직(바로가기)

 

오늘 와이프와 아이들과 함께 부활절을 준비하러 교회로 가던 길에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노래를 따라부르자 와이프가 "이런 노래도 알아?"라고 묻는다.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 앨범에 있던 Seal의 Kiss From A Rose, All-4-One의 I Can Love You Like That, 가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Let Her Cry 등의 노래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때부터였다. 사춘기 중학생의 팝송 사랑이 시작된 것. 브라이언 아담스의 Have You Ever Really Loved A Woman, 스팅,, 본조비와 스콜피언스의 가슴 끓는 노래들....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를 듣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였다.

 

출처 : 연합뉴스(관련 기사 바로가기)

인기 DJ였던 김기덕 씨의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알았다. 


대학에 가면서 언제부터인가 나의 팝송 사랑도 식었다. 그때 그 노래를 들으니 감성낭만 충만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시내 형들은 지금 뭘 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때 그 레코드 가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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