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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함박스테이크를 통해 바라본 스마트한 스터디 실상

어제 주말을 맞아 동네에 있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응팔(응답하라 1988)의 추억이 돋는 음식, 그날의 감동을 생각하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옆 자리 앉은 대학생들의 대화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절대 엿들으려는 의도는 없었다. 함박스테이크를 먹은 학생들이 ‘스터디 진행 방향’이라는 주제로 워낙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던 터라 안 들으려고 해도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음식을 다 먹고, ‘호기롭게’ 그릇들을 옆으로 탁 제쳐 둔 채로 대화를 신 나게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호기롭다’(의기가 씩씩하고 호방하다)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통상 대학생에게서만 볼 수 있는 패기를 봤기 때문이다. 보통 직장인 같으면 음식을 먹고 난 뒤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자리를 옮겨 커피숍으로 가거나 한다. 음식점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대학생 땐 그런 거 신경 별로 안 썼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밥 다 먹고도 안 나가고 있으면 눈치 보이는 면이 있다. 이 대학생들은 적어도 우리가 주문하고서부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계산하고 나올 때까지 자리를 꿰차고 이야기를 이어갔으니 호기롭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어제 함박스테이크 집에서 대강 이런 모습이었다...

들으려고 한 게 아니라 들렸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

 

놀라운 건 대화 내용이었다. 스터디를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체계적으로, 무엇보다 각종 어플 등을 활용해 ‘스마트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격세지감.


나도 밥 먹는 일과 대화 나누는 일을 겸하면서 들어서 대강의 내용 전달밖에 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길.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선 목표치를 정해 공부를 하고 매일 캡처해서 올린다. 매달, 또 일일 분량을 사전에 정해 놓고 진도를 뽑으면 자동으로 계산되고, 거기 퍼센트가 미달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주 단위, 월 단위 벌금으로 세분화한다. 목표치는 구글의 to do list를 활용할지, 여러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매일 ‘기상 인증’을 카톡이나 네이버 밴드를 활용해 올리고, 각자가 정한 시간을 넘기면 이 역시 벌금. 스터디 어플을 활용해 공부시간을 체크하기도 했다. ‘완전 스파르타!’ 매주·매일 운동하는 요일과 시간 등을 체크해 그것 역시 인증 제도. 목표치를 매달 수정할 기회(카드)를 한 번씩 사용할지 두 장의 카드를 줄 지도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잘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도 확실했다. 여러 불비한 상황에도 정한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한 사람에게는 벌금을 올인해서 한 번 주는 그런 제도도 있었다. 그리고 재밌는 단어도 나왔다. 조세권이라고, 어떤 경우(이 부분을 제대로 못 듣고 놓친 것이 아쉽다) 뭔가를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즉시 하는 것이 아니라 차후 지급할 수 있도록 ‘조세권’을 부여하는 것이란다.

 

예전 스터디 했던 모습이 대비됐다. 스터디룸에 모여 각자 정리해 온 것을 돌려보면서 평가를 하고, 그 자리에서 스터디 주제에 맞게 글을 쓰든, 발표하든 그런 것이 전부였다. 생활 스터디라는 것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이야길 듣고 있자니 각자 떨어져 있으면서, 각자의 자율권(기상 운동 공부 시간 등)을 주면서도 일거수일투족을 체크 평가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스마트한 세상에서 IT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 워크’만 있는 줄 알았더니 스터디에서도 여지없었다. (사실 후기를 남기진 않았지만 최근에 '스마트 워크 특별전담반'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어플 등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IT 기기나 어플이 발달할수록 업무와 개인 시간의 영역이 흐릿해져 삶의 질은 더 낮아지는 것 아니냔 생각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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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이 여럿이란 생각을 하니, 진작 취업한 게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대화 내용을 들으면서 느꼈던 놀라움의 여운이 지금도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다소 어설펐지만 치열했던 대학생 스터디의 ‘낭만’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단 생각이 들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취준생들 앞에서 사치스런 생각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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