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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 반지하 전세에서 출발했습니다.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단출했죠.

창문 위로 비를 막아주는 콘크리트와 주인집 마당 일부, 좀 더 앞에는 앞집 벽이 보였습니다.

해가 잘 들지 않아 보통 어두컴컴했고,

낮에 잠깐 해가 조그맣게 들 때는 와이프와 신기해하기도 했죠.

늘 형광등을 켜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반지하라도 오랜 자취생활, 단칸방 생활을 끝내고

집 같은 집에서 살게 됐다는 생각에 기뻤죠.

하지만 아이가 태어났는데 자주 코가 막히고 감기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주거 환경은 그렇게 중요했나 봅니다.

어른들은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겐 그대로 전달이 되더라고요.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무조건 공기 좋은 곳으로 알아봤습니다.

반지하를 간신히 벗어났으니 보증금을 댈 만한 돈이 여유 있을 리 없었죠.

발품을 팔아 관악산 밑자락 빌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공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집 뒤엔 바로 등산로가 연결되는,

집 앞 유리창으로는 신림동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경을 자랑하는 곳이었죠.

하지만 좋은 점만 있진 않았습니다. 집이 급경사였죠.

오르고 오르다 보면 여름엔 땀이 흥건,

겨울엔 눈이라도 오면 눈썰매장이 되는 그런 곳,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자식 출퇴근 걱정에 마음을 쉬 놓지 못하셨죠.

그래도 감사하며 생활했습니다. 반지하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있었지만 버틸만했습니다.

하지만 첫째가 유치원 추첨에 덜컥 붙으면서 또 상황이 변했습니다. 

와이프가 둘째를 안고 매번 급경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등하원을 시키기엔 한계가 있었죠.

유치원 근처로 집을 알아봤습니다.

마침 공기 좋은 산자락 밑에 경사도 별로 없는 괜찮은 아파트가 있더라고요.

전세를 알아보니 전셋집 구하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전셋값이나 집값이나 얼마 차이도 안 나고

 그래서 매매했습니다. 물론, 대출을 잔뜩 받아야 했죠.

 

어제 이사를 마치고, 매매 계약도 완료했습니다.

헛, 집 주인이 됐습니다.

전망 좋은 곳에, 집 인근엔 도서관도 있고

매매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집 앞으로는 괜찮은 공원도 있더라고요.

산책로와 등산로. 서울에 이런 곳도 있네요.

웬만한 짐 정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새삼 자취 때 단칸방 집, 신혼 첫 반지하 집이 떠올랐습니다.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오더군요.

 

'집을 구해야지'라며 악착같이 덤벼든 건 아닌데,

처한 곳에 만족하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그러다 상황이 변하고 그러다 거기 맞는 곳을 찾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서울 땅에서 촌놈이 집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은행이 주인이지만 ㅎㅎ

감사한 하루입니다. 감동을 남기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