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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한 장이면 충분?

 

솔직히 이런 게 왜 필요하나 싶었다.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에 가면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손 씻고 티슈를 뽑아 쓰면서 이 문구를 볼 때면 ‘당연한 소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아마도 두 장 쓰는 걸 좀 아끼자는 취지로 이해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최근 화장실에서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손놀림이 너무 유려했기 때문이다. ‘착착착 차차착’ 순간 눈을 의심했다. 정확히 6장이었다. 오히려 천천히 뽑았다면 6장인지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손목의 스냅이 리듬감을 탔기 때문에 정확히 복기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내 또래로 보이는 그 30대 남성에겐 ‘착착착 차차착’이 습관으로 자리했기 때문에 거침없었던가 보다. 다시 필름을 돌려봐도 ‘착착착 착착착’ 혹은 ‘착착착 차차착’이 맞았다. 정확히 여섯 장이다.

 

설마 싶었다. ‘아마도 밥을 먹다 물을 잔뜩 흘려 닦을 것이 필요했겠지’, 아니면 ‘다른 용도로 티슈가 무더기로 필요했겠지’ 내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그런 용도가 아니었다. ‘착착착 차차착’ 세상에 나온 6장의 티슈는 오직 한 주인의 손을 섬긴 후 생을 마감했다. 짧게 살아도 불꽃이라도 태웠다면 덜 억울했겠지만, 요렇게 조렇게 그저 한두 번 성의 없이 닦인 티슈는 바로 휴지통으로 향했다. 이리 허무한 결말에 여섯 전사나 동원되다니. 허탈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그에게 지적질을 했다면 나는 같은 30대 또래임에도 꼰대가 됐을 것인가. 그저 외면한 채 돌아서야 했다. 남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은 보통 용기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분명히 깨달았다. 외면하는 이에겐 대신 찜찜함이 남는다. 내 머리엔 찜찜하게도 그 장면이 너무도 생생히 남아 있다. ‘착착착 착착착’. 앞에 세 번은 일정한 간격으로, 뒤에 세 번은 약간의 속도가 붙어서. 그래서 여섯 장.

 

당연하다 생각했던 게 누군가에겐 당연지사가 아니었던 거다. 적당히 닦아도 금방 마를 텐데, 물기 좀 남아 있다고 어찌 되는 게 아닌데, 손에 때를 벗기는 것도... 그도 분명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라는 문구를 수차례 봤을 텐데 그걸 보고 뭔 생각을 할까.


소심하게 이 자리를 빌려(이 자리를 빌어는 잘못된 표현 ㅎ) 그에게 외친다. ‘고마해라. 마 됐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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