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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운동장과 러닝머신

 

자취하던 대학생 때는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운동장을 달렸다. 속도를 내고 싶을 때 내고 줄이고 싶을 때 줄이는 맛이 있었다. 가슴 터지게 달리고 헉헉대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사회인이 된 요즘엔 체력단련실을 이용한다. 헬스장 내 러닝머신은 실내에서 TV를 보면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여유롭게 달릴 수 있지만 주어진 속도에 맞춰야 한다. 샤워 시설도 갖춰져 있어 나처럼 직장인이 이용하기엔 제격이다. 그러나 뛰다 보면 맘껏 뛰고 싶을 때도 여건상 절제할 수밖에 없다. 나처럼 아쉬워하는 이들을 위해 인터벌 코스라든지 속도가 자동으로 바뀌는 몇 가지 프로그램화된 게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속도에 맞춰야 한다.

똑같은 1.5km의 목표를 두고 뛰더라도 운동장이냐 러닝머신이냐, 각각의 느낌이 이렇게 다르다. 운동장이라는 넓은 공간을 실내로 가져온 러닝머신처럼 축소되고 편리해지는 것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스마트폰도 결국 각종 서류와 다이어리, 수첩, MP3, 게임기를 전화기 하나에 다 떼려 넣은 것 아닌가. 하지만 종이에 글을 쓸 때 서걱거리는 그 멋진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낭만이 떨어진다. 미친 듯이 뛰다 말다 가슴 터지다 말다 하던 그런 희열이 돋아나지 못하는 러닝머신처럼 말이다.

오늘 러닝머신을 뛰면서 이 레이스가 지금의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틀에 얽매여 너무 안정적으로 골인 지점에 도착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좀 더 자유롭게 맘껏 공간을 누비며 골인할 수도 있을 텐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데. 안정과 편리함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자유가 들어올 틈바구니가 좀 더 생기지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에서 낭만을 좀 더 탑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