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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책책책

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비채, 2019)

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비채, 2019) 


-총평

판사 출신이 쓴 책이라 디테일이 살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법정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 책들이 비전문적인 용어나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문가가 쓴 책이라 법리적 뒷받침이 되는 건 이 책의 강점. 하지만 출연진들이 캐릭터에 맞지 않는 용어 사용을 간혹 하는 등 거슬리는 부분은 함정


-디테일이 살아 있는 부분

법정을 묘사하면서 ‘계단을 세 칸 올라가 법대 가운데’… 법정에 들어가 봐도 판사들이 선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계단이 세 칸이라는 건 경험한 사람이 알 수 있는 세밀함. 

‘본인임을 확인하는 인정 신문 절차를’… 이 부분 역시 ‘신문’ ‘심문’의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고 드라마 등에서는 용어가 혼동돼 사용되는 걸 볼 수 있는데 전문적이다. 


-어색한 단어들

60페이지에 피해자 누나가 “경황해서”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볼 수 있는데.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다. 판사 출신 저자라 그런 단어를 사용한 게 아닐지. 


-대비되는 단어 사용

‘언론에 알려진 사건’ - ‘맨 얼굴’, ‘부검의의 메스’ - ‘자연의 박테리아’(나름 부검에 대한 선입견을 건드린 부분이었다. 부검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좀 아니다 싶었던 기억이. 하지만 자연의 박테리아는 그보다 더 잔인하다는 걸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판결을 보면서 늘 느낀 거지만 ‘역시 판결은 사람이 한다. 법을 근거로 들어서’

합의 과정이 있다는 건 역시 판사들의 의견이 갈린다는 뜻이다. 합의부의 경우엔 합의 과정이 비공개이고 소설처럼 결과만 노출되지만,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에서는 다수 의견, 소수 의견이 갈린다. 같은 법을 놓고도 판단하는 법관,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이다. ‘법의 지배’라고 하지만 실상은 결국 사람이다. 

소설에서도 그런 부분을 자주 볼 수 있다. 합의 과정에서 느끼는 고뇌, 판사 개인의 성향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 ‘서류상 무죄’라고 했던 부분도 그렇고. 


-마무리 평

153페이지를 읽을 때까진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이야기를 옮겨놓은 듯한 느낌. 그 뒤부터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빨려들 듯 속도를 내서 읽었다. 그래서 후반부엔 필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 남길 말이 별로 없다. 다만 배석인 민지욱도 판사인데, 주인공도 그렇고. 합의부 3명 중 2명이 사실상 괴물이 된다는 것인데… 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자가 글의 흐름이나 관련성을 나름 곳곳에 마련해 놓아서인지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