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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문신 유무를 밝히라는 지시가 내려진다면?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 헌법판례동향에서 출력


기상천외한 판결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기상천외한 일들이 그만큼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겠죠. 최근에 만난 한 법조인은 "요즘엔 별의별 사건이 다 접수돼서 판사들이 판결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인권 개념도 발전하고, 분쟁이나 이해관계 역시 세분화돼 별별 사건이 판결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외국도 예외는 아니네요. 최근 ‘우리나라 대법관 편향은 미국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글에서 외국의 판례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사이트에 있는 헌법판례동향에서 흥미로운 판결이 눈에 띄길래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일본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나온 판결이네요.




당신이 공무원인데 상부에서 문신 유무에 대한 조사에 응답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배경은 이렇습니다. 2012년 2월 오사카시 아동복지시설에 근무하는 30대 남성 직원이 아이들에게 문신을 보여주고 폭언한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됐습니다. 시는 이 일을 계기로 직원들에게 문신 조사를 했죠. 


그런데 이 사건 당사자인 A 씨는 이 조사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20년 이상 근무한 A 씨는 양심의 자유,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서 응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지시를 내린 교통국장이 심기가 불편했겠죠? ‘직무상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방공무원법 등에 근거해 A 씨에게 계고처분을 내립니다. A 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교통국장은 전임 명령을 내려버렸죠. 우리나라에서도 알게 모르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겠죠?


이런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한 A 씨는 전임명령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습니다. 판결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20년 이상 일한 A 씨에 대해 직무 변경 명령을 내린 것은 다른 이유보다 A 씨의 소송에 대한 혐오에 의한 것으로 추측되고, 소송취하의 요구에 불응한 것에 대한 대항조치로 취해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면서 A 씨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힌 데에는 교통국장의 과실이 있다고 보고, 고등재판소는 위자료 100만 엔 판결을 내렸습니다.




문신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점 문신을 많이 하는 추세에 있죠. 언젠가 공무원에게 문신 여부에 대한 조사가 내려질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 공무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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