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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법과 언론

재혼금지기간이 있는 나라 일본, 우리는?

민법 811조(재혼금지기간)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일본에서 여성 재혼 금지기간을 6개월에서 100일로 단축한다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자 우리나라에선 재혼금지기간이 있는 나라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조문은 어느 나라 민법일까요? 우리 민법입니다. 다만 지금은 폐지됐고, 2005년까지 살아 있었던 조문입니다.


일본 최고재판소 홈페이지 캡처(바로가기)


2005년 '호주제 폐지'를 통해 호주승계가 사라지고 결혼이나 입양의 경우에도 호적을 옮길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죠. 그때 위의 여성 재혼금지기간도 함께 폐지됐습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당시 법안 제안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부성추정의 충돌을 피할 목적으로 여성에 대하여 6월의 재혼금지기간을 두고 있는 규정을 이를 삭제함(현행 제811조 삭제)’이라고 돼 있네요. 


지금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 같은 조항이 들어가 있었던 이유는 바로 ‘부성추정’에 관한 것이었죠. 쉽게 말해 이혼한 여성이 아이를 낳을 경우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명확히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시대 변화와 함께 아마도 기술적으로 친자 확인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런 조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요? 지난해 12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여성 재혼금지기간 6개월을 규정한 일본 민법 733조가 위헌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재판관 15명 만장일치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100일간 금지하는 것은 합헌 결정을 내렸죠. 6개월과 100일 어떤 차이길래... 아래의 판결 취지를 보면 내용은 알 수 있지만 요즘 시대에 맞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에서 해외 헌법판례 동향(바로가기)으로 일본의 이 판례를 번역해서 올려놨네요.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X 씨는 전 남편인 A 씨의 가정 폭력으로 2006년 별거했고, 2008년 3월 이혼했다. X 씨는 현재 남편 B 씨와 교제하게 돼 A 씨와의 이혼 직전에 B 씨의 자녀를 임신했습니다. X 씨는 이혼 후 바로 혼인신고를 하려 했지만, 민법 제733조 1항 ‘여자는 전혼(前婚)의 해소 또는 취소의 날로부터 6개월을 경과한 후가 아니면, 재혼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혼인신고를 할 수 없게 되죠. 결국, 6개월이 지난 10월에 혼인이 성립됐습니다. X 씨는 혼인지연으로 인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고, 합리적 근거 없이 여성을 차별대우하는 이 규정이 헌법 제14조와 24조에 반한다고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여기에 더해 민법 772조에 따라 여성의 재혼 후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계산상 100일의 재혼금지기간을 둠으로써 부성추정이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도 들었습니다. 


관련 법 조항

민법 제772조 [적출의 추정] ① 처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한다. ②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의 해소 혹은 취소된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한 자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헌법 제14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인종, 신조(信條), 성별, 사회적 신분 또는 문벌(門閥)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24조 ① 혼인은 양성의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하고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상호협력에 의하여 유지되어야 한다. ② 배우자의 선택, 재산권, 상속, 주거의 선정, 이혼과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그 밖의 사항에 관해서는 법률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 제정되어야 한다.


1·2심에서 기각됐지만 3심인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우선 100일 내 금지는 합헌을 선고했습니다. 최고재판소는 "재혼을 100일 후로 제약하는 것은 혼인 및 가족에 관한 사항에 대해 국회에 인정되는 합리적인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는 것이 아니고, 상기 입법목적과의 관련에서 합리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판시. 이혼 100일 후 재혼한 여성의 경우 이혼 후 300일 이내 출산한 아이는 전 남편의 아이이고, 혼인 후 200일 후(이혼 후로 따지면 300일이 되죠) 출산하면 현재 남편의 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며 금지기간을 100일로 명시한 것입니다. 사실 6개월이나 100일이나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긴 합니다.


반면 100일 초과 부분은 위헌을 선고했습니다. 판시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미진하긴 하지만 역시 법은 시대 흐름에 따라가나 봅니다. "의료와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재혼금지기간을 부성추정의 중복을 피하는 것으로 엄밀하게 한정하지 않으면 그 정당화는 곤란할 것이며 또, 1947년 민법개정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상황 및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혼인 및 가족의 실태도 변화했다."고 밝히죠.  


해외의 사례도 들고 있습니다. 독일은 1998년 시행된 ‘친자법 개혁법’에 따라, 프랑스는 2005년 시행된 ‘이혼에 관한 2004년 5월 26일의 법률’에 따라 모두 재혼금지기간 제도를 폐지. 


그런데 왜 가까운 우리나라의 2005년 민법 개정사례는 들지 않았는지 그게 의문이네요. 법조인들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일까요?

 

일본이 성적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이면서 가족관계에서는 이 조항으로만 따지면 우리보다 보수적인 면도 있군요.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도 이 조항이 폐지됐듯 일본에서 몇 년 뒤면 이 조항이 삭제될 것이란 예측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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