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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엉뚱한 생각

한글날을 맞아 꺼내든 영어무용론?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겠지만 영어를 못해서 일상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해외 출장이라든지, 국제 세미나 등에 가서 누군가를 인터뷰해야 할 상황을 맞으면 물론 자극이 된다. 조금 되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된다. ‘아, 영어 공부해야겠다’. 하지만 그때뿐, 그런 업무도 사실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요즘엔 외국인을 만나서 꼭 영어로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도 한국어를 모르고, 나도 영어를 모르면 서로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내가 을의 위치라면 손짓 발짓해가며 아쉬운 영어라도 해야겠지만 살면서 가까이 한국인 중에도 갑으로 모시는 분들이 별로 없는데 외국인에게까지 그럴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답답하면 그가 한국어를 배우면 되잖아. 지금은 좀 어설프긴 하지만 구글 번역기도 날이 갈수록 수준이 높아질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


영어를 잘하면 좋고, 편리하고, 좀 더 당당해지고, 활력소가 되는 건 당연하다. 제일 부러웠던 건 어릴 적 외국에 살다 와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이들이었다. 외국에 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그런 두려움을 떨쳐 낸 이들은 정녕 대단하다. 나는 외국에 살다 오지 못했고, 졸업과 입사를 턱걸이로 할 만한 정도의 시험 영어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 때문에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현재로선 ‘영어를 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고민의 도피처로 삼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한글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수필이나 시를 쓰다 보면 단어 선택에 고민이 된다. 의미가 원뜻에 가까운 단어가 있을 테지만 아는 게 거기까지라 아쉽게 차선책 단어를 써야 할 때가 있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모국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가 왜 그리도 많은지. 자주 쓰면서도 ‘틈틈이’인지 ‘틈틈히’인지 늘 헷갈려서 검색하게 된다. ‘00할 지’와 ‘00할지’의 띄어쓰기, ‘되라’와 ‘돼라’, ‘맞다’와 ‘맞는다’의 의미 차이는 여전히 머릿속을 오락가락한다. ‘입장’으로 쓰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문장도 일본식 표현이라 ‘견해’로 고쳐 쓰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중적인 단어가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덜 대중적인 단어로 대체하는 게 맞을까.


다시, 원래 고민으로 돌아온다. 30대 중반, 영어를 쓸 일이 당장엔 별로 없지만 투자를 해 놓으면 언젠가는 빛을 볼 만한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배경이라면 과연 영어에 투자하는 것이 맞을까.


오늘 한글날 기념으로 내린 나름의 소심한 결론은 이렇다. 글쓰기를 업으로 결정한 마당에 국어에 좀 더 시간을 들이자. 영어는 굳이…. 그러나 그렇다고 아주 버리지는 말자. 작은 가능성이라도 불씨를 아주 꺼뜨리지 말자는 차원에서다. 이건 순전히 나만의 결론이다. 처한 환경이 다르기에 당장 내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당장 내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아니 될 소리다. 아이들만큼은 최소한 나와 같은 고민을 갖지 않도록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를 꼭 제공하고 싶은 게 아비로서의 솔직한 마음이다.


아비는 아비 나름의 결론에 충실 하고자 오늘도 국어사전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