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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엉뚱한 생각

좌회전에 대한 엉뚱한 상상


운전하다가 좌회전 대기 차량이 밀려서 두세 번의 신호 끝에 겨우 빠져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모든 운전자가 좌회전 신호를 보고 동시에 액셀(accelerator)을 밟는 ‘합의’를 보면 어떨까. 그러면 훨씬 많은 차량이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첫 번째 차량이 액셀을 밟고 출발하면 두 번째 차량이 움직이고, 두 번째 차량이 움직이는 걸 인식한 세 번째 차량이 액셀을 밟는다. 이런 반복이 세 번째 네 번째 순으로 오면 후순위 차량은 한참 뒤 액셀을 밟게 된다.

'동시 액셀 밟기'를 위해서는 전제돼야 할 것이 많긴 하다.


-좌회전 대기 모든 차량 운전자가 신호를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휴대폰을 봐서도, 옆 운전자와 대화해서도 안 된다.(앞에 화물차라도 있어서 시야가 가리면 이 합의는 불가하다.)

-좌회전 신호와 동시에 액셀을 같은 강도의 세기로 밟아야 한다는 공감대, 합의가 필요하다.

-합의만으로 되지 않고 훈련이 돼야 한다.

-누군가 화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욱하는 기분에 세게 밟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쩔쩔매는 ‘김여사’가 중간에 끼어있으면 안 될 건 없지만, 곤란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 않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결론은 이런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에서도 아마 이런 ‘합의와 훈련’은 힘들어 보인다.


이런 생각을 뜬금없이 하게 된 이유는 사실 무인 자동차의 등장 때문이다. 자동 운전 자동차를 TV에서 보면서 어쩌면 이 엉뚱한 상상이 실현될 날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인 자동차 15대가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고, 15대 모두 어떤 링크 시스템에 의해 좌회전 신호와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는 상상. 사람의 합의와 훈련으로 할 수 없는 영역에 시스템이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너무 편의주의적인 생각일까, 획일적인 통제 시스템을 강요하는 발상일까, 나름 들어줄 만한 아이디어일까. 


막히는 서울 도심에서 운전대를 잡다 보면 온갖 잡다한 생각이 떠오른다. 게다가 오늘 설 연휴 기차표 예매에 정각에 접속하고도, 또한번 실패하면서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히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