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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시사스러운

원로의 부재

<김영삼민주센터>


원로란 사전적 의미로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해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의미를 반영하듯 원로원은 고대 로마의 입법·자문기관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삶과 직결되는 법을 제정하는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고, 그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길을 제시해 줄 역량을 갖췄다는 의미다. 해당 분야의 산 역사,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일제히 그의 어록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화 정치사의 발자취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업적이 뚜렷한 만큼 이면에 감춰진 과오도 분명 존재한다. 어떤 언론에서는 공과를 대비하면서 ‘금융실명제 VS 친인척 비리’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사망으로, 길을 잃은 한국 정치사에 쓴소리를 할 원로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치의 낭만 시대를 이끌었던 ‘3김 시대’ 중에선 김종필 전 국무총리만 생존해 있다. 정치 공학만 난무하고, 철학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현실 정치의 상황을 볼 때 애석한 일이다. 


경험으로 보자면 원로라는 단어가 좋은 의미로 읽히지만 최근 원로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몇몇 사태를 보면 이 단어가 꼭 좋은 의미로만 볼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국정교과서’ 필진에 오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성추행 논란에 급하차했다. 본인은 여기자에게 던진 농담으로 치부했다. 사실 최 교수가 활동하던 전성기에는 그저 농으로 던진 말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일반적 시각으로 볼 때 그것은 분명 성추행이었다. 그의 경험과 공로가 대단할지 몰라도 그의 일반적 사회 인식은 현재와 동떨어져 있다. 


53년에 빛나는 역사를 가진 대종상이 주요 후보들의 불참으로 반토막 난 원인을 일부 평론가들은 원로영화인들의 기득권 싸움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일정 부분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분야에서 연차가 높아지다 보면 경험은 쌓이게 마련이다. 그 경험이 공로와 자산으로 남을지, 아니면 그 분야와 이 사회에 암초 같은 역할을 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공과 중 어느 한 면만 있을 수는 없다. 과가 있어도 공을 인정해야 할 때도있다. 사소한 한순간의 실수로 원로라는 직위를 잃게 되는 요즘 사회 분위기를 애써 변명의 기회로 삼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회를 걱정하는 진정한 원로라면 엄격하고 투명해진 사회 분위기를 환영해야지, 탓한다고 될 일인가. 


요즘 원로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는 원로를 더 보기 어려울 듯하다. 나이가 든다고 자동으로 원로로 대접받기는 쉽지 않은 현실. 하지만 그래서 원로의 존재가 더 가치있게 빛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