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계를 구매한 이유는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 많지도 않은데, 이 가끔 있는 평일 저녁 육아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다음날 보내도 될 메시지를 굳이 참을성 없이 저녁에 보내는 상사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봐야 퇴근 후 기껏 한두 시간밖에 안 되는데, ‘띠리링’ ‘카톡’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에게 "잠시만"이라고 말한 뒤 폰을 확인하곤, 아니 확인해야 했다. 직업 특성상 문자나 카톡이 시시때때로 오고, 그 중 지나쳐도 될 만한 메시지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하거나 꺼 놓을 수 없다. 열에 여덟아홉은 폐기물이지만 열에 한둘은 뭔가 내가 답해야 하거나 반응을 해야 하는 그런 메시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갓 말을 시작한 둘째가 내 폰을 가리키며 "아빠는 핸드폰 좋아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쿵. 아이들과 놀면서도 폰을 수시로 만지작거리니 그렇게 느꼈나 보다. 잠시 잠깐의 시간도 폰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니.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게 스마트시계다. 누군가 별 쓸모가 없다고 중고로 내놓은 상품을 샀다. 그에겐 있으나 마나 한 상품이 내게 오니 필수 아이템이 됐다.
블루투스로 연결돼 딱 문자와 카톡만 알림을 받게 설정해 놨다. ‘띠리링’ ‘카톡’이 울려도 폰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슬쩍 이 시계를 쳐다보면 반응을 해야 할 메시지인지 폐기 처리해도 되는 메시지인지 금방 알게 된다. 꼭 필요할 때만 폰을 찾으면 된다.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안도 발의됐다고 한다. 발의는 됐지만 통과되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설사 선언적 의미로 통과되더라도 현장 적용은 더 어렵지 않을까. 법도 상사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내 권리, 이렇게라도 찾아야지. 퇴근 후, 또 휴일, 나는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리라! 스마트시계 구매는 퇴근 후 업무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위한 소심한 투쟁이자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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