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봤다. 어느 아파트에 붙어 있는 경고문이었다.
택배 기사 및 배달원 엘리베이터 사용자제 안내
배달시 반드시 계단을 이용해 주세요
신문, 우유 등 배달시 승강기 사용 금지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경고’라는 엄중함을 더한 문구를 봤을 때 이런 경고문을 부착한 아파트가 정말 있나 싶었다. 이 여름날,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자신들의 물건을 배달해 주는 분들에게 엘베 사용을 금지하도록 한 것은 어느 나라 민심인가 싶었다. 발끈하는 마음에 당장 내 의견을 어딘가에 표출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이런 문구를 붙이나 호기심이 들어 인터넷 검색을 좀 해봤다.
내용을 좀 보다 보니 이런 문구가 왜 붙게 됐는지는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떤 분의 글을 읽으니 20층 아파트에서 물건을 잔뜩 실은 택배 기사가 꼭대기부터 순차적으로 물건을 엘베에 쌓아서, 문이 닫히지 못하도록 물건으로 막고 아래층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엘베가 하나밖에 없는 통로에는 택배 기사분의 업무 종료 때까지 사실상 엘베는 마비 상태가 된단다. 더운 여름날 사람 미치게 할 만한 상황에 공감이 갔다. 꼭대기 층부터 내려오다 기다리고 있는 1층의 비난 세례를 피하고자 3층쯤 도착해서는 택배 기사가 계단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엘베 건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택배 기사에 대한 불만도 여러 글에서 묻어났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물건을 놓고 간 택배 기사도 있었단다. 나도 밤 11시가 넘은 시각, 무차별 두드림을 한 번 당해 봤던 터라 이해가 됐다.
이러한 불만을 가진 상황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위의 경고문을 붙이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반대로 택배 기사의 입장에서 시간에 쫓기는 직업상 엘베를 독점하는 것이 합당한가. 온갖 주민들의 비난에도 엘베를 독점하지 않고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더 비난받을 만한 건 아닌가. 엘베 독점 없이 정석대로 택배 배달을 했을 경우 배달 시간이 지연됐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배달 지연이 더 화나는 일일까 엘베를 독점하는 것이 더 화나는 일일까. 문을 마구 두드리는 일부 택배 기사의 행동을 근거로 별건인 엘베 사용 규제의 근거로 삼았다면 경고문을 준엄하게 부착한 행동은 지지받을 일인가. 아파트 관리비 등을 근거로 사용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뤄보면 괜찮을 만한 주제. 역시 사람이 한쪽 입장에서만 보거나 들으면 편협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저런 경고문은 그래도 좀 지나치지 않으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양측의 주장을 들으니 일방적으로 택배 기사의 편을 들면서 저 경고문을 붙인 누군가를 몰아붙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인생사 > 수필인듯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가의 절반을 보내며 (0) | 2016.07.28 |
---|---|
바닷가보다 계곡을 찾는 사람들 (0) | 2016.07.28 |
휴가 일주일 전 마음이란 (2) | 2016.07.19 |
다시 용기를 (0) | 2016.07.11 |
스마트시계, 퇴근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 (1) | 2016.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