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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육아아아하

3살부터 경쟁

와이프와 고민고민하다 접수 마지막날인 며칠 전 유치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만3세 과정. 입학하는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이제 5살.
오늘 추첨 현장도 그렇고, 뉴스를 보니 경쟁률이 15대 1인 곳도 있었다고 한다.

'육아'라는 단어는 밤잠 못자고 아이의 말도 안되는 땡깡을 받다보면 조금씩 실감이 나기도 했었지만, '학부모'라는 단어는 사실 지금껏 와닿지 않았다.

오늘 추첨이 이뤄진 현장 이야기를 접하면서, 추첨 결과를 집에서 조마조마한 맘으로 기다리면서 비로소 내가 학부모의 세계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실감케 됐다. 물론 초등학교쯤 돼야 정식 학부모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참 너무하네. 다섯살이 될 아이의 1년치 플랜, 아니 만3세 과정은 초등학교 입학 전 3년 과정을 보통 쭉 이어서 밟게 되는데 그 과정을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하다니.

그것도 로또식으로 추첨에서 당첨되면 다행이겠으나 떨어진 다수의 아이들은 집에서 먼 다른 유치원으로, 그마저 안 된 아이들은 어쩔수 없이 웃돈을 얹어가며 사립유치원, 아니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다른 대안을 찾아.

육아와 보육, 국공립 교육 정책을 정부서 내놓고 있다. 몇해 전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매달 얼마의 돈이 나온다. 하지만 학부모 나이가 돼보니 믿고 맡길 어린이집이 궁하고, 맞벌이시에 부모님이 아니고는 안심하고 맡길 사람이 없다. 유치원에 보낼 나이가 되니 진입 문턱이 시작부터 높다. 문제다. 이렇게 이른 나이에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을까 고심 끝에 5세 과정 지원을 택했으나 그 고민도 치열한 경쟁 현실에 비춰보면 결국 사치더라.

추첨 전 당락을 알 수 없을 때 마음이란. 일단 당첨 되면 날듯 기쁠 것이고 떨어지면 아이에겐 죄라도 지은 것 같은, 또 앞으로 1년 어떻게 집에서 육아를 해야 할까, 1년 뒤엔 유치원 추첨이 더 하늘에 별따기라던데 막막함이 몰려드는 그런 심정이 추첨하기도 전에 느껴졌다.

육아와 보육, 국공립 교육 정책 입안자들은 '돈 조금 지원해주면 되겠지' 이런 간편한 생각으론 안 된다. 대다수인 맞벌이 부부가 느끼는 실질적 필요 충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정책 입안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국공립 유치원 증설이 더 힘들어진다고 하니 도대체 아이들을 어찌 키우라는 건지.

결론. 입학허가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경거망동 말아야지 다짐했으나 막상 당첨되니 뛸듯 날듯 기쁜건 부모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육아와 공교육 정책을 이 글에서 비교적 신사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당첨됐다는 이유가 큰 게 사실이다. 떨어졌다면 이 글 분위기가 훨씬 더 험악해졌겠지.

아이는 치열한 경쟁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오늘도 장난감 놀이에 여념이 없다. 경쟁을 아직 모르는 나이. 부모가 대리인 자격으로 첫 경쟁을 치른 셈.

다가올 수많은 경쟁은 이제 조금씩 아이가 직접 대면해야 할 터. 아이가 맞이할 치열한 세상에 대한 막막함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도, 당장 눈앞의 당첨 결과에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 나도 점점 아빠가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