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레고와 뜨개질

 

얼마 전 아내가 뜨개질을 시작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분하게 뭘 저러고 있나 싶었다. 이 아까운 시간에 저런 단순 작업이라니. 뜨개질하면 맘이 잘 정돈된다는 말이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첫째 아들놈이 어느덧 레고를 할 만한 나이가 되면서 고민하다 중고로 몇 개 싸게 주문했다. 이번 주 일찍 퇴근한 날, 또 오늘 주말을 이용해 하나씩 만들었다. 오늘 만든 레고는 장장 3시간 정도 걸렸다. 레고를 만들 땐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옆엔 커피 한 잔 갖다 놓고 그렇게 그렇게 여유 있게 만들 수 있다. 맨날 놀자고 보채는 첫째 녀석도 자기 장난감 만드는 건 줄 알고 구경에 신 났다. 옆에서 조물딱 조물딱 뭔가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 싫어하는 낮잠도, 자고 나면 레고가 완성돼 있을 거란 말에 순순히 이불로 향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레고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을 했다. 하루하루 마감에 쫓기고, 마감 후 한가로움 속에서도 늘 무언의 압박이 있다. 긴장이 풀린다. 

 


그제야 아내의 뜨개질이 이해가 되더라. 육아는 기본적으로 정신없다. 말이 터진 두 녀석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 청소의 개운함은 이내 뒤덮이는 장난감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늘 혼돈 상태다. 나는 직장이라는 피난처라도 있지만, 아내는 사실상 24시간 육아 모드, 첫째가 유치원 가는 몇 시간이 있지만 그때도 아직 어린 둘째가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 온전한 자유가 아니다. 아내의 뜨개질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다. 잠을 쪼개 가며, 흩어진 정신들을 정돈하는 유일한 시간.


바쁜 일상 속, 단순 작업이 주는 휴식이 있다. 정신 정돈을 위한 취미가 우리 부부에게 생긴 셈이다.


"나는 부품을 조립할 테니 당신은 실을 엮으시오!"

'인생사 > 수필인듯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름을 추구한다는 것  (0) 2016.10.11
나는 너에게 내 생일을 알려주지 않았다  (0) 2016.10.04
갈등과 결말  (0) 2016.09.26
가을인가  (0) 2016.09.22
시험에 대한 기억  (0) 201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