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늘 조용히 지나갔던 편이다.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단지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 익숙지 않다. 평소 잘하면 되지 굳이 기념일에 반짝 축하하거나 축하받는 게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기념일, 아이의 생일도 그렇게 챙기는 편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나서 바뀌었다고? 아니다. 난 연예 때부터 기념일을 모르고 살았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 그래서 천생연분인가 보다. 단체 카톡방에서 누군가의 생일에 의무적으로 한마디씩 거드는 게 별로다. 그래서 친한 사이라 생각될 땐 축하 메시지를 잘 남기지 않고, 오히려 덜 친한 사이에는 혹시 오해할까 봐 내키지 않는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다 옛말이 됐다. 조용히 지나갈 수 없게 됐다. 최근 생일을 맞은 날(이것도 개인정보라 날짜를 특정하지 않는다!), 출근했더니 "오늘 생일이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다. 카톡이 친절하게 알려 주셨단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가 날아온다. 축하받을 사람들에게 받는 것은 괜찮았지만, 그 중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을 내가 알았었나’ 싶은 인사가 날린 메시지에 뭐라 답해야 하나. 형식적인 카톡엔 형식으로 응수할 수밖에.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여기에 ‘ㅎㅎ’ 이모티콘은 필수다. 친한 사이라면 굳이 달 필요도 없지만 모르기에 더 달아야 한다.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다. 덕분에 소수이긴 하지만 꼭 만나고 싶던 사람들, 보고 싶었지만 한동안 연락이 끊겨 다시 하기 서먹했던 사람들에게도 연락이 왔다. 미약하나마 나와 그 사이에 끈이 연결됐다.
그래도, 괜히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과민반응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내 생일이 노출되다니…. 비밀에 부칠 만큼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소중한 개인정보다. 진심 축하해줄 사람에게만 공개하고 싶은 그런 나만의 정보란 말이다. 내 기억엔 카톡 가입할 때 ‘비공개로 하시겠습니까’라는 설정 항목을 본 적이 없다. 있는 데도 내가 놓친 건가, 그런 게 애초 없었던 건가.
수많은 사람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지만 역시 연휴를 겸해 처가에 내려가 있는 아내에겐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서운한 게 아니라 괜히 고마웠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비밀도 아닌 정보인 내 생일을 아는 이날, 내 사랑하는 아내는 그런 시류에 굴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간다. 처가에 있는 휴대폰 충전기가 맞지 않아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없다는 것이 어제 마지막 메시지 내용이었다. 어제 아내에게 보낸 카톡도 아직 ‘1’이 그대로 떠 있다. 내 아내는 굳이 스마트폰을 충전하지 않고 하루 이틀을 살아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 그런 성품을 가지고 있다. 휴대폰 조작을 잘 못 한다고 때론 남편의 구박을 듣긴 하지만 그래도 스마트폰보다 얼굴을 직접 마주 보고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게 내 아내다.
깜깜이 스마트폰이 흔해 빠진 내 생일 정보를 아내에게 알려주지 않아 다행이다. 조용한 생일을 보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아내만 유일하게 나에게 제공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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