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강산이 변했을 법한데도 외모는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둘 다 남편이자 아빠가 됐다는 사실이 신분상 변화였다. 물불 가릴 것 없었던 학생에서 전후좌우를 따져야 하는 사회인이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애들 키우는 얘길 하다가 화제는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의 근황으로 이어졌다. "00 소식은 들었냐?", "00은 요즘 00 한단다", "00은 아무도 소식을 모른대", "00은 아직 결혼을 안 했대", "00은 00 시험 준비하다가 안 돼서 00 한단다", "00은 000가 됐단다" 이런 이야기였다.
어느 친구 이야길 전하니 그 친구가 "00가 제일 잘됐네"라고 한다. 순간 10여 년 전 그와 내가 나눴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당시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서로를 비교할 건더기도 별로 없던 때였다. 학생 신분으로 외적인 것을 보자면 고작 어학연수나 영어 점수, 연애, 공모전 수상, 과나 학생회 활동 등의 차이만 있었다. 그래도 녀석은 "00가 우리 중에 제일 잘 나가네" 이런 말을 했었다. 그에 대해 다른 건 다 까먹었지만, 그 말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여전히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한 걸 보면 그때도 단순히 잘못 내뱉은 말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은 그 자체로 좋았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았다. 항상 집단 내에서 서열을 매기는 습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를 친구로서가 아닌 순위로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친구들도 말을 하지 않을 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나 역시 내면에서 괜히 점잖은 척하면서 그런 비교 의식을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녀석이 매긴 순위에 나는 몇 위 정도로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최소한 "00가 제일 잘됐네’라고 할 때 그 이름이 나는 아니었으니 ‘최고’가 아닌 건 확실하다.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아쉽다 해야 하나.
누구나 비교를 한다. 꿈과 이상이 넘치던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해관계가 여러 갈래로 얽히고설키다 보면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래도 친구 간 굳이 그런 비교를 하고, 굳이 그걸 입 밖에 내는 게 맞을까. 그를 다시 만나는 건 괘념치 않으나 수년 뒤 다시 녀석을 만났을 때 ‘내 순위는 올라갈까 내려갈까’ 이런 긴장감을 가져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나조차 비교 의식에 물들어 가는 것인가. 나이가 들수록 순수함과 낭만을 열망한다는 게 쉽지 않다.
*젝스키스의 신곡 '지금 우리 여기'처럼 세 단어면 충분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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