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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수필인듯 에세이

11월의 어느 멋진 날에


생일을 잘 기념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이 블로그를 개설한 지 1년이 됐는데도 모르고 지나쳤다. 되짚어보니 지난해 11월 2일 ‘응답하라’는 제목의 첫 글을 남기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뒤늦게 1주년을 기념해 본다.


1년간 256개의 글을 남겼다. 내 글 스타일은 내 그림과 비슷하다. 공들인 정밀함을 갖추기보다, 어떤 주제 하나를 정하고 후다닥 써 내려간 성격이 강하다. 굳이 그림에 비유하자면 크로키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틈나는 대로 써야 하기에 넉넉한 시간을 잡고 쓸 여건은 되지 않는다. 일도 하고, 집안의 대소사도 신경 써야 하고, 틈틈이 방송도 하면서 육아도 해야 한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걸을 상황도, 걸을 생각도 현재로선 없다. 그렇지만 ‘틈새 글쓰기’의 매력에 갈수록 빠져든다. 이렇게 빠져들다 보면 또 모르지. 사람의 내일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1년을 기념해 책을 내볼까 생각했다가 요즘엔 좀 더 정밀함에 신경 쓰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좀 갈팡질팡하고 있다. 책까지 내지는 못했지만, 목표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1년 256개를 썼으니 이 패턴으로 꾸준히 10년을 쓰면 2500여 개의 글이 이 블로그에 담길 수 있다. 적어도 기계적인 계산으로는 그렇다. 정물화식 글쓰기를 해도 최소 1500개 이상의 글을 남길 수 있겠지. 그땐 어떤 주제든 엮으면 뭔가 작품이 나올 것 같다. 꾸준히 10년이면 언젠가 전문가의 반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글만 썼던 건 아니다. 1년 동안 1일 3끼를 먹었으니, 1000끼 이상의 밥을 먹었다. 책도 읽고, 사고, 팔았다. 쌓이는 책의 깊이만큼 생각도 한층 더 깊어졌다. 그러고 보니 이사도 했구나. 출입처를 옮겼고, 취재원들도 여럿 만났다. 방송도 하게 됐고, 멀리 사는 지인들에게 안부도 전했다. 부모님께는 이번 주말에 연락을 못 드렸는데, 내일 전화 드려야겠다. 조카의 100일을 맞아 어젠 장인·장모님이 올라오셔서 가족 모임도 했다. 서울대공원이라는 아이들의 새로운 아지트에 이젠 아내 없이도 첫째와 둘째 녀석을 데리고 몇 시간을 끄떡없이 놀 수 있는 육아 내공도 생겼다. 핸드폰도 3년 약정이 다 차서, 과감하게 최신 기종으로 바꿨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일일이 열거하기엔 민망해서 생략.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은 지지율이 곤두박질쳐서 최근 5%를 찍었고, 나라 꼴은 뒤숭숭 진행형이다.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했지만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한 주 업무를 시작하는 내일도 저녁 약속이 기다리고 있고, 다만 졸지에 준공무원(?)으로 신분이 확장됐다. 사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래도 낭만이 살아있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아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퇴근 후 두 녀석이 아빠를 향해 돌진하며 외치는 ‘아빠~’ 샤우팅에 흥이 절로 난다.


낼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있다. 한 주간도 파이팅, 앞으로 블로그 2주년도 더욱 힘차게. 더 늦으면 낼 업무에 지장이 있으니 이만 11월의 어느 멋진 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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